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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Ko Sep 05. 2016

7세기 이슬람 세력의 위엄, 신트라 무어인의 성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스물한 번째 이야기

포르투갈의 산토리니, 아제나스 두 마르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신트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음 목적지는 '무어인의 성'. 441번 버스의 종착역인 '포테라 드 신트라'에서도 무어인의 성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그런데, 아침을 부실히 먹어서인지, 배가 점점 고프기 시작했다. 잠깐은 참을 수 있겠지만, 무어인의 성이든 페냐 성이든 일단 관광지로 이동하면 밥을 먹기가 애매해질 것 같았기에 일단 기차를 타고 신트라 역으로 이동했다.  

무어인의 성, 페냐 성 등 아름다운 성들로 유명한 이 곳, 신트라는 세계적인 축구스타 호날두의 고향이기도 하다. 진작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마드리드에서 산 호날두 유니폼을 입고 갔을텐데... 그나저나 하루에도 수백명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의 기차역치고는 신트라 역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아무리 아름다운 절경도 배가 고프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 일단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기차역 맞은편에 있는 중국 음식점으로 향했다. 신트라에 대한 블로그 후기를 찾다보면, 포스팅 2~3개 중 하나는 반드시 언급하는 곳이기도 하다. RGB 번호 255,0,0을 자랑하는 붉은 간판 덕분에 아마 멀리서도 쉽게 이곳을 찾아올 수 있었다.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드러누워 죽순을 처묵처묵하는 팬더들이었다. 비록 가게 안에 손님은 한 테이블 밖에 없었지만, 오리지날 중국의 향취가 물씬 느껴지면서 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급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수 많은 블로거들이 극찬한 신트라 중국집의 매운 짬뽕이다. 약간은 희멀건 국물의 색깔을 보고, '이거, 뭔가 잘못된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국물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머릿 속에 모든 잡념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먹어야 한다'는 본능만이 살아있을 뿐. 짬뽕 한 그릇의 가격은 6.75유로, 한 8,000원쯤 되려나? 절대 돈이 아깝지 않은 맛이다. 

배를 든든히 채운 후, 버스 정류장을 찾아 길을 나섰다. 뭐 그냥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그 곳이 바로 버스정류장이다. 신트라 지역의 주요 관광지와 버스 노선이 알기 쉽게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일단 434번을 타고 '무어인의 성'으로 출발했다.    


참고로 신트라 역에서 434번 버스를 타면, 신트라 지역의 소위 볼만한 관광지는 다 갈 수 있다. 신트라 빌라에서 시작해서, 무어인의 성, 페냐 성을 지나 신트라 장난감 박물관을 찍고 신트라 역으로 들어오는 이 순환버스는 20분에 한 대씩 출발한다. 버스에 오르기 전, 미리 시간표를 챙기면 조금 더 계획적으로 신트라 지역을 여행할 수 있다.  

일정이 그리 넉넉치 않았기에, 신트라 빌라를 건너뛰고 바로 무어인의 성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만 올라가면 티켓박스가 보인다. 이 곳에서 무어인의 성 뿐 아니라 페냐 성으로 들어가는 입장권도 살 수 있다. 무어인의 성과 페냐 성을 묶은 통합권도 있는데, 가격은 14.5 유로. 

저 자그마한 문을 통과하면 7세기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와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물론 프랑스 지역까지 세를 과시했던 무어인의 흔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어떤가? 말로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 않는가? 저 당시에는 저 문을 통과하면 왠지 그늘이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가 들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던 것 같다. 

그늘은 개뿔, 완만하지만 오르막에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가슴대신 머리통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사진으로 이 길을 다시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미국의 국립공원 길이 생각난다. 쭉 뻗은 산책로와 길 가의 푸른 나무들, 아! 참고로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미국을 가본 적이 없다. 

그래도 길이 잘 포장되어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얼마 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왔나보다. (사실, 버스로 한참을 올라오긴 했음) 저 멀리 산 아래 마을이 보이는데, 마치 관악산 정상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이다. 

저 멀리, 동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성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 저 당시에는 안내 책자를 뒤져가며 '아, 이게 저거구나' 하면서 다녔던 것 같은데, 지금와서 보니, 저 성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 성의 이름이 중요한가? 그냥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즐기면 되지. 

길이 워낙 잘 포장되어 있다보니, 정상에 있는 매점 직원들까지 그 덕을 보는 것 같다. 한국에서 등산을 할 때마다, '과연 정상에 있는 매점 음료수는 어떻게 가져오는 것일까?' 궁금했었는데, 적어도 포르투갈의 산악 유통 시스템은 대충 알 것도 같다. 

터덜터덜 올라오다 보니, 어느 새 망루에 도착했다. 산봉우리 높은 곳에 우뚝 세워진 망루에 오르면 저 멀리 신트라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워낙 맑아서 신트라 너머 리스본 지역까지 보일 기세다. 문득 아제나스 두 마르에서의 잔뜩 흐렸던 하늘이 떠올라 괜스레 울적해졌다.  

망루에 오르면 끝일것이라 생각했는데, 천만에 말씀! 지금까지는 그저 몸 풀기였을 뿐, 이제부터 본 게임 시작이다. 험준한 산 능선을 따라 무어인들이 건설해 놓은 성벽이 끝없이 이어진다. 제대로 된 난간도 없이 성벽을 따라 걸으니,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싹한 기분에 이미 더위따위는 잊은지 오래다. 

그래도 쉬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환상적인 풍경때문이었다. 탁트인 시야에 맑은 하늘, 그 아래 펼쳐진 주황색 지붕들까지... 그나저나 저 멀리 보이는 푸르른 지역은 설마 대서양인 것이냐? 

재미있었던 사실 하나! 이 곳에서는 동양인 관광객을 단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요리보고 조리봐도 온통 서양인들뿐이다. 아직까지도 이 곳에 동양인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아제나스 두 마르에서도 다른 관광객을 한 명도 못보았다. 그냥 그 날 내 일진이 사람을 만나는 운세가 아니었나보다. 

깎아진 듯한 절벽위로 구불구불 세워진 성벽이 보이는가? 걷는 것도 이렇게 힘들고 아찔한데, 1,300년 전에 이렇게 웅장한 성벽을 쌓았다니... 정말이지 당시 무어인은 대단했던 것 같다. 무어인은 도대체 무어를 먹고 이렇게 강성해진 것일까? (죄송) 

하늘에서 무어인의 성을 내려다 본 비행기도 감탄했는지, 잘 했다며 V자를 그려주고 있다. 

성벽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만난 아저씨, 혹시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은 아니겠지? 뭐 그냥 힘들어서 쉬고 있는 거지만, 보는 사람의 가슴이 다 철렁인다. 사진에는 다 나오지 않았지만, 저 바위 아래는 그냥 레알 완전 낭떠러지였음 

성벽을 따라 앞만 보고 걸었는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이미 내가 걸어올라온 성벽이 저만치 아래에 있었다. 사실, 이 정도 높이를 걸어오르면 숨이 턱턱 막힐법도 한데, 잘 포장된 돌 길을 따라 걸어서 그랬는지,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점점 위로 올라갈 수록 살랑대는 바람도 더욱 시원해졌다.  

저 멀리 보이는 성이 혹시 페냐 성? 그렇다면 다음 목적지인데...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길이 페냐 성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왔던 길을 도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 올 때는 풍경을 즐겨가며 가벼운 마음으로 걸었지만, 돌아가는 길은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야 할 지가 대충 가늠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더 피곤했다. 

'이제는 우리가 내려가야 할 시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요~♪' 비록 갈 길은 막막하지만, 이제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야 한다. 시간이 조금 넉넉했더라면, 그리고 일행이 있었더라면, 이 곳에서 바람을 즐기며 콜라라도 한 사발 마셔제끼고 내려갔을텐데... 돌이켜보면 조금은 아쉬웠던 순간이다. 그래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신난다고 저기서 맥주를 들이키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 하산을 앞두고 마시는 술은 음주운전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시길...  

자 그럼 오늘 포스팅은 이렇게 공익적인 분위기로 마무리 하고, 다음 목적지인 페냐 성으로 이동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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