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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Ko Sep 06. 2016

신트라 숲 속에서 찾은 아름다운 보석, 페나 성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스물두 번째 이야기

영국의 천재 시인, 바이런이 '위대한 에덴'이라 칭했던 곳, 대서양에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 바람 덕에 여름철에도 시원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그래서 예로부터 포르투갈뿐 아니라 스페인, 영국의 귀족들은 이 곳 신트라에 별장을 짓고 자연을 음미하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신트라의 수 많은 건물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대부분 '페나 성'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포르투갈 특유의 알록달록한 파스텔 톤 건물은 마치 놀이동산에나 있을법한 화려한 건물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페나 성은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의 모티브가 되었고, 그 노이이슈반슈타인 성을 본따 만든 것이 디즈니 성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디즈니랜드의 할아버지 앞에 와 있는 셈이다. 

434번 버스를 타고 페나 성 앞에 내린 후, 무어인의 성에서 산 통합권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왔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오른편에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딱히 살만한 것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기념품 가게를 바로 옆으로 미니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나는 버스를 타는 대신, 산책도 할 겸, 쉬엄쉬엄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 것은 치명적인 실수! 이미 무어 성에서 체력을 많이 소진한 탓에 페나 성까지 올라가는 길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사실 입구에서부터 페나 성까지는 걸어서 10~15분 거리로 그리 먼 길이 아니다. 하지만, 다음 목적지인 호카 곶으로 가는 버스를 놓치지는 않을까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그만큼 체력도 점점 빨리 방전되고 있었다. 나무사이로 페나 성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던 저 순간에는 머리가 머리가 어질어질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페나 성! 당시에는 멋지다는 생각보다는 다 왔다는 안도감이 먼저 밀려왔었는데, 지금와서 사진을 보니, 참 아름답고 멋진 곳이다. 왠만한 놀이동산 못지 않은 화려함을 자랑하는 이 곳은 페르디난트라는 사람이 두 번째 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선물로 페나 성을 받은 부인은 물론, 부인을 두 명이나 (혹은 그 이상) 데리고 살았던 페르디난트가 너무 부러웠다. 

저질 체력 탓에 감흥은 떨어졌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돌아설 수는 없었다. 몸은 힘들고 더웠지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은 후 카메라를 건넸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서양인들에게 사진을 부탁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나와 그들이 생각하는 구도에는 항상 차이가 있다. 나는 배경을 중심에 두고 인물은 최대한 한 쪽 구석에 밀어넣는 구도를 선호하지만, 내가 만났던 서양인들의 100명 중 90명 이상은 이렇게 중앙집권형으로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사진을 부탁하기 전, 카메라 액정에 내가 나올 위치를 미리 콕! 찝어준 후 카메라를 건네곤 한다. 

노랑과 빨강의 조합은 언뜻 생각하기에는 촌스러운 느낌이 들 것도 같지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제법 잘 어울렸고, 아름다웠다. 그나저나 페나 성이 건축된게 1885년이라고 하니, 벌써 100년도 더 된 건물인데, 어떻게 이런 선명한 색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성벽을 따라 나있는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아래에서 올려다 봤을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페나 성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때마다 나의 체력은 한 칸씩 내려가고 있었다.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신트라 마을 뿐 아니라, 대서양까지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물론, 날씨가 좋아야겠지만... 탁 트인 시야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무어인의 성'. 길고 험한 저 성벽을 불과 한 시간 전에 걷고 있었다니, 갑자기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여행을 하다보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벅찬 무언가를 느낄 때가 많다. 사실, 여행이라는게 돈과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드는 취미인데, 순간 순간 밀려오는 그런 감정들 때문에 도무지 끊을 수가 없는 것 같다.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위로 위로 올라가면, (땡볕 아래서) 편하게 쉴 수 있는 테라스가 있다. 천막이나 파라솔 같은 게 없는지 두리번 거렸지만, 도대체가 그늘이란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언젠가 '동양사람들은 그늘에서, 서양사람들은 햇볕을 즐기며, 휴식을 취한다'는 글을 본 것 같은데, 이번 여행에서 그 말을 100% 실감했다. 그늘이 있어도 궂이 햇볕을 찾아다니는게 이 곳 사람들인데, 파라솔을 가져다 놓을 리가 없다. 

일단, 매점에 들어가 콜라를 하나 산 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더워 죽겠는데 그늘도 없고 못해먹겠다고 투덜거리며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그나마 조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콜라를 원샷 때리고 나니, 땡볕에 앉아 있는 게 더 이상 쉬는 게 아니었다. 이내 지친 몸을 이끌고 그늘을 찾아 성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성 안에는 100여년 전, 페나 성에 살던 귀족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해 놓고 있었다. 엔틱한 원목가구와 그 위에 올려진 화려한 식기들, 역시 귀족의 삶이란... 이런 간접체험 말고, 상류층의 삶을 한 번이라도 직접 살아봤으면 하는 맘이 정말이지 간절하다. 지금은 연수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왔으니, 이 한 몸 바쳐서 열심히 일을 해봐야겠다. 뭐, 그래도 아마 난 안될꺼야... 그치?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잡은 페나 성의 침실, 왠지 모르게 세고비아 백설공주 성에서 봤던 침실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뭐 무식한 동양의 촌놈 눈에는 유럽의 침실이 다 거기서 거기로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사실, 처음에나 신기했지, 방을 하나씩 지나면서부터 급격히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안보고 가긴 좀 그러니까, 대충 훑어보고 가자'라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뭔가에 쫓기듯 허겁지겁 페나 성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실제로도 시간이 넉넉하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호카곶' 일정 탓에 마음은 점점 초조해졌다. 결과적으로 하루에 돌아보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가급적 신트라를 '1박 2일'에 거쳐 둘러보라고 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금만 시간 여유가 있었더라면, 이 곳 페나 성에서도 더 많은 것을 느끼며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혹시라도 다음 번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다시 찾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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