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서른네 번째 이야기
에싸우이라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마라케시,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처음에는 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탔고, 사하라 사막 투어를 마친 뒤에는 봉고차로, 그리고 이제는 에싸우이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터미널을 거쳐 메디나로 들어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했던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되었는지 받걸음에 여유가 묻어났다. 터미널 인근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 후, 숙소로 돌아와 모처럼만에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오전의 제마 엘프냐 광장은 마치 예전 여의도 광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텅텅 비어있었다. 지난밤에 보았던 화려하고 북적이는 모습과는 천양지차! 문득 '낮져밤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광장에서 갈라져 나오는 수많은 골목길마다 모로코 사람들의 일상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수크'라고 불리는 이슬람 전통시장에는 가죽제품부터 각종 수공예품, 향신료, 견과류에 카펫까지 없는 것이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모로코는 뛰어난 염색기술을 바탕으로 한 가죽제품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스페인 남부지방에는 모로코산 가죽을 파는 아랍시장이 성행하고 있는데, 이 곳 마라케시에서도 훌륭한 가죽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손에 넣을 수 있다. 바가지만 쓰지 않는다면 말이다.
좁은 길 양옆으로 늘어선 온갖 물건들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나마 나무를 덧대어 만든 천장 덕분에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었다. 비록 비 오는 날엔 빗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엉성한 천장이지만, 얼기설기 틈 사이로 햇빛이 스며드는 묘하게 운치 있는 천장이기도 하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이 모로코를 쏙 빼닮았다.
미로 같은 수크를 지나 도착한 곳은 Musee de Marrakech, 바로 마라케시의 역사를 품은 박물관이다. 구글맵을 켜고 왔는데도 특색 없는 흙빛 건물의 외관 탓에 하마터면 박물관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마라케시 박물관은 왕궁을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 뭐 딱히 대단한 것은 없다. 모로코 역대 대통령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사진이 걸린 통로를 지나 커다란 홀로 들어섰다. 사람 하나 없는 텅 빈 공간에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천으로 된 천장을 통해 햇빛이 스며들면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공간이다.
드문드문 유물로 보이는 그릇이나 악기 등이 전시되어 있긴 했지만, 사실 모로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인지 별다른 감흥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기둥과 벽을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 문양이 인상적이었다.
박물관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문득 고개를 들어 발견한 스테인글라스. 중앙의 스테인글라스를 중심으로 갖가지 문양이 좌우 대칭으로 펼쳐져 있었다. 성당에서만 보던 스테인글라스가 이슬람 건물에 그것도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니! 프랑스 식민지 시절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을 정복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저 부분을 스테인글라스로 바꿔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스테인글라스 자체가 7세기에 중동 이슬람 문화권에서 사용된 양식이고, 11세기 이후 유럽으로 전파되어 교회 건축에 사용된 것이라고 한다. 하마터면 습자지같은 얉은 지식으로 말도 안 되는 썰을 풀어낼 뻔했다.
기계적으로 박물관 이곳저곳을 대충 훑고 출구를 찾아 나오는데, 뭔가 색다른 분위기의 방이 있었다. 뻥 뚫린 천장으로 푸른 하늘이 보이는 이 곳의 정체는 뭘까?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하얀 벽면에 뜻을 알 수 없는 예술작품이 몇 개 걸려 있었다. 아마도 최근의 미술품들을 전시해 놓은 것 같다. 그림 옆으로 작가와 그림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는데, 프랑스어라 도무지 해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
마라케시 박물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메데르사 벤 유세프', 그러니까 14세기의 이슬람 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무려 800여 명의 무슬림 학생들이 이 곳에서 코란과 법학을 공부했다고 하니, 당시 마라케시가 얼마나 번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1층의 정원에는 목욕탕에서나 볼 법한 네모난 수조가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15년 3월에는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도 많이 없고 수조도 텅텅 비어있었는데, 성수기에는 저기에 물을 채워 인공 연못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당시에는 좀 생뚱맞다 싶었는데 다른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물이 가득 채워진 사진을 보니 나름 운치가 있다.
방안의 벽면과 천장에는 아랍어와 화려한 문양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고딕 양식이니 르네상스니 하는 유럽의 건축양식과 달리, 이슬람 건축의 화려함은 건물의 외관보다는 내부에 새겨진 글자와 문양에 오롯이 담겨 있다.
사람이 일일이 돌을 파내고 깎아가며 저렇게 복잡한 글자를 새겨 넣었다니, 정말 대단한 정성이다.
2층에는 14세기 당시에 학생들이 공부했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뷰는 이렇게 화려하지만, 막상 2층으로 올라가 보면 1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2층에는 약 130여 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공부방 또는 기숙사로 이용되던 곳이라고 한다. 웅장한 크기와 화려한 문양들로 장식된 1층과는 달리 2층은 너무나 단촐한 모습이다. 아마도 학생들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서너 평 남짓한 공간에 작은 창문 하나가 전부인 곳이 많았는데, 얼핏 보면 감옥 같기도 하고, 새하얀 벽을 보면 정신병원이 떠오르기도 한다. 수백 년 전 이곳에 틀어박혀 코란을 달달 외워야 했던 모로코의 대학생들은 어떤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을까?
'마라케시 박물관'과 메데르사 벤 유세프'는 딱히 볼 것은 없지만, 안 보고 지나치기엔 뭔가 아쉬운 곳이다. 왁자지껄한 마라케시의 메디나와 달리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간이지만, 모로코의 역사를 느끼기엔 조금 부족하다.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과 현재의 고단한 일상의 중간, 그 어디쯤의 모습이랄까?
박물관과 메데르사 벤 유세프를 둘러보느라 두어 시간을 보내고 나니, 메디나의 골목길이 다시금 낯설게만 느껴졌다. 출구를 찾아 허둥대는 나를 본 모로코 청년이 길을 안내해주겠다며 말을 걸어왔다. 뭔가에 홀린 듯 청년을 따라 걸었는데, 그가 멈춰 선 곳은 전혀 엉뚱한 곳이었다. 게다가 당당하게 수고료를 요구하는 그의 모습에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한참 동안이나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에는 지폐 한 장을 쥐어주고 구글맵에 의지해 다시금 길을 걸었다. 이놈의 모로코, 특히 마라케시는 도대체가 단 하루도 편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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