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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Ko Oct 28. 2016

미슐랭 별이 셋! 세비야 맛집 Casa la Viuda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마흔세 번째 이야기

드넓은 세비야 대성당과 높디높은 히랄다 탑까지 둘러보고 나니, 정말 미칠듯한 허기가 몰려왔다. 이제는 점심을 먹어야 할 때, 그리고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숙제를 해야 할 시간이다. 

세비야 대성당을 나오는 길, 오렌지 나무가 잔뜩 심어져 있는 정원이 펼쳐져 있다. '오렌지 정원'이라 불리는 이 곳은 이슬람 건축양식에 따라 조성된 중앙정원인데, 그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성당 구경을 마친 관광객들이 한 숨 돌리며 쉬기에 딱 좋은 장소가. 나무 그늘 아래서 구글맵을 켜고 'Casa La Viuda'를 입력했다. 그러고 나서 휴식이랄 것도 없이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사 라 비우다(Casa la Viuda)', 미망인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세비야, 아니 아마 스페인에서 가장 훌륭한 레스토랑일 거다.. 무려 미슐랭 가이드에 그 이름을 당당히 올린 곳이기 때문이다. 드높은 명성에 비해 초라해 보일 정도로 단출한 외관이 조금은 의외였지만, 무슨 상관일까? 원래 진정한 맛집은 외관 따위 신경 쓰지 않기 마련이지! 

1924년 처음 문을 연 까사 라 비우다(Casa la Viuda)는 2013년부터 무려 3년 연속으로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맛집이다. 참고로 내가 세비야 여행을 계획하면서 알아볼 때는 그냥 미슐랭 맛집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도 꾸준히 미슐랭 추천 레스토랑으로 선정되었나 보다.    


까사 라 비우다의 대표 메뉴는 단연 '대구 요리', '바깔라오 알 에스틸로 라 비우다'라는 길고 복잡한 이름을 가진 음식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어 메뉴판이 있어서 이 복잡한 이름을 달달 외울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냥 한국어 메뉴판을 받아 들고 '대구 토마토소스 요리'를 주문하면 된다. 가격은 11유로, 15,000원이 채 되지 않는 가격에 세계 최고급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어찌 그냥 넘길 수 있으랴? 

일단 햇살이 잘 드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받아 들었다. 며칠 전부터 이곳에 와서 대구요리를 먹겠다고 결심했는데, 메뉴판을 넘기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워낙에 육식을 좋아하는 탓에 스테이크를 두고 생선요리를 도저히 시킬 수가 없었다. 일행이라도 있으면 사이좋게 하나씩 시켜서 나눠먹기라도 할 텐데... 혼자 하는 여행이 가장 아쉬울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일단 시원한 상그리아를 한 잔 주문했다. 스페인에서는 상그리아, 레드 와인에는 육류 요리라고 되뇌며, 연립방정식을 풀어내듯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요리를 정말 잘하는 집은 대구요리든 스테이크든 다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거라며, 계속해서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정성스레 주문한 메뉴였는데, 막상 지금 와서는 메뉴의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다. 아마도 이베리코 돼지 등심으로 구운 스테이크였던 것 같다. 이베리코 돼지는 야생 도토리와 허브, 올리브 등을 먹고 자란 돼지로 스페인의 대표적인 음식인 하몽을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돼지 고기임에도 불구하고 소고기처럼 마블링이 있는 게 특징인데, 그래서인지 식감이 엄청 부드러웠다. 함께 나온 감자튀김도 맛이 꽤 괜찮았다. 튀김인지 조림인지 헷갈릴 정도로 기름이 줄줄 흐르는 게 건강에는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한 번 맛을 보면 손을 뗄 수가 없는 불량식품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배를 빵빵하게 채운 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뭔가 조금 아쉬운 감이 들었다. 세비야에 와서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맛집을 찾았는데, 정작 미슐랭에서 추천하는 메뉴를 구경도 못하고 가는 게 말이 될까? 거, 몇 푼 하지도 않는 거 같은데, 일단 하나 더 시켜봐야겠다. 

서빙하는 아저씨께 '메뉴를 하나 더 시킬까 하는데, 다 먹을 수 있을까?'라는 의미 없는 질문은 던지니, 걱정하지 말란다. 자기네 가게 음식은 너무너무 맛있어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면서 호탕하게 웃는다. 그리고 몇 분 후, 눈앞에 나타난 대구 토마토소스 요리!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부터가 일품이다. 마치 내가 미슐랭 가이드 감정사라도 된 양 떨리는 마음으로 음식을 한 점 입에 넣었다. 


'할렐루야!', 세비야 성당에서 봤던 성모상이 환하게 빛나며 눈 앞에 서있는 것만 같은 황홀함이 밀려온다. 이게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맛일까? 단언컨대 그동안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다만, 아쉽게도 이미 배가 찰대로 차 버렸다. 대구살 두 덩이를 먹고 나니 더 이상 배에 음식이 들어갈 공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음식을 버리기도 아쉬워 테라스 주변을 맴도는 비둘기들에게 던져줬다. 미슐랭 추천 음식을 먹는 비둘기라니, 참 저 비둘기들도 오늘 복 받은 거다. 

나 한입, 너도 한입, 세비야 골목을 배회하던 비둘기들과 오붓하게 대구 요리를 나눠먹고 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이 정말 최고였다고, 너무 맛있어서 울 뻔했다고 직원에게 칭찬을 건네니 내일 또 오란다. ㅋㅋ 그러게, 나도 그러고 싶다만, 이제 론다로 넘어가야 한다. 다음번에 세비야에 올 일이 있으면 꼭 다시 찾겠다는 말을 건네며 음식점 내부를 좀 찍겠다고 하니 자기를 찍으란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이렇게 활달하고 유쾌한 사람들 덕에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비야가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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