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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Jan 16. 2021

운전: 세상에서 가장 손재주 없는 사람의 도전기 2

올해 운은 다 썼다.


잠을 자면서 본인의 심장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가슴에 귀를 갖다 대지 않았는데도 심장소리가 들린다는 건, 그만큼 심장이 비정상 적으로 쿵쿵 뛴다는 의미일 것이다.

거의 한 달 동안, 나는 내 심장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하루 종일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에 수능, 겨울방학까지 겹쳐 도로주행은 아주 오래 기다려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기능시험을 치르고 정확히 3주 후였다.

그동안 운전에 대한 감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학원에서 올려준 도로주행 코스를 계속 돌려가면서 보았다.

도로주행 코스는 총 4개인데, A> C> B> D의 순서대로 쉬웠다. 마지막 D코스는 어린이 보호구역, 우회전, 교차로, 공사구역 등등 아주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어서 다들 꺼리는 코스였다. 나 역시 저것만 안 걸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수업을 받았다.


기능 수업이 참 힘들었는데 도로주행을 해보니 기능은 아주 쉬웠구나를 절실히 느꼈다.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도로에 무면허인 내가 차를 몰고 나간다는 자체가 공포스러웠다. 물론 노란 운전학원 차를 보면 대부분 배려해주시고 양보해주셨지만, 그렇지 않은 차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버스와 트럭들이 너무 무서웠다.

수업은 총 6시간이었는데 한겨울에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수업이 끝나면 나도 모르게 편의점으로 달려가 가장 단 무언가를 사서 입에 집어넣기 바빴다. “당 떨어진다”를 절실히 느낀 날들이었다.


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도로에 나가 연습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기능 합격을 하면 연습면허가 나와서 면허를 딴지 3년 경과한 자와 동승을 하는 조건으로 도로 연습이 가능하다. 또한 차에 “주행 연습”이라는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 밤에 남편과 한적한 주차장을 돌며 우회전 좌회전 연습만 했다.




도로주행 수업이 끝난 바로 뒷 날, 시험을 보았다.

세상에, 빌고 빌고 또 빌었는데. D코스가 나왔다.

속으로 젠장을 외치며 주행 시작.

그런데 어라? 운수가 좋은 날이던가. 도로를 나가니 그날따라 차가 별로 없었고 아주 수월하게 진행을 했다. 그리고 도착까지 100미터 정도 남은 지점.


우와, 나 합격이다! 제일 어려운 코스인데!

남편한테 자랑해야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때, 태블릿에서 나오던 목소리.


“속도위반 실격입니다”


?????????????????????????????

?????????????????????????????


감독관이 말했다.

아니, 학원 입구에서 속도를 줄여도 모자랄 판에 50 도로에 62를 밟으면 어떡합니까?


그랬다. 나는 합격이라는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엑셀을 무지하게 밟고 있었던 것이다.


내 첫 번째 시험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어이가 없어서 집에 오는 길에 눈물이 났다.

아니, 초보 중의 초보인 내가 다른 이유도 아니고 세상에.. 속도위반으로 실격을 하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다음 시험은 3주 후에나 가능했다.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불면에 시달렸다.

얼굴에 다크서클이 번져가는 나를 보던 남편은 주행 연습 스티커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코스를 직접 돌아보자고 제안을 했다. 운전자보험에 추가로 보험을 들기도 했다.

연말 내내 하루 한 번씩, 코스를 돌았다. 등에 땀이 났지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었던 건, 운전학원 연습차량이 많은 곳이라 차들이 배려를 많이 해줬다는 것이다.




1월 둘째 주에 두 번째 시험이 있었다. 안정액까지 마시고 갔건만 약효는 역시나 없었다. 시험은 10시 시작인데 나는 11시가 넘어서야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두 번째로 까다로운 B코스. 그래도 D가 아닌 게 어디냐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코스를 다 돌고 입구로 들어오는데 태블릿에서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라는 소리가 났다.

너무 기뻐서 감독관 아저씨랑 하이파이브를 한 나.....

-_-


면허증 신청 후 10분 만에 면허증이 나왔다.

세상에, 내가 운전면허증을 갖게 되다니.

주민등록증만큼이나 다들 가지고 있는 면허증이라지만 오늘 아니면 또 언제 자랑을 해볼 거야. 시댁 친정할 것 없이 전화해서 자랑을 했다.

태워주겠다고 하니 시아버님은 기대한다고 하셨고 시어머니는 싫다셨다 ㅋㅋㅋㅋㅋ


남편은 이제 주말에 주차나 다른 소소한 것들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또 열심히 연습해서 아이가 추운 날 고생하지 않도록 해줘야지. 이게 다 네 덕이다. 고마워 딸아.


노란 “초보운전” 스티커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설렌다. 이 세상 모든 초보운전자들, 아우토반을 달리는 그 날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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