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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Jan 20. 2021

제발 성격 좀 고쳐

부부는 정 반대로 만난다

오늘 남편이 말했다.

“제발 성격 좀 고쳐”


나와 남편은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선 남편은 감정 기복이 없다.

체온으로 비유를 하자면, 평생 36.5도의 온도를 가진 사람이다. 저체온이 와서 벌벌 떠는 일도, 고열로 병원에 실려가는 일도 없는. 감정이 아주 건강한 사람.

늘 논리적이고, 차분하며 다정하다.

어떤 일을 마주하면 당황하기보다는 그 일이 왜 생겼는지 고민한 후, 해결하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감정 기복이 아주 심하다.

누군가 말했다. 너는 단무지 같은 사람이라고.

(단순, 무식, 지X)

근데 그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아서 반박도 못했다.

체온으로 비유를 하자면, 나는 저체온도, 고열도 많이 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위험하고,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고, 활발하지만 우울하다.


오늘 남편과 은행을 갔다.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아무 생각 없이 문을 밀었다가 문에 내 이마 주름이 대문짝만 하게 찍혔다.

문에는 “당기시오”라고 적혀있었다.

이마가 아픈 것 보다도 사람들의 시선에 부끄러웠다.


“당기라잖아”

남편이 말했다.

“아니, 당기는 거나 미는 거나 그게 그거지. 근데 <당기시오> 랑 <미시오> 랑 너무 헷갈리지 않아?”

“왜 헷갈려. 당기는 건 당기는 거고 미는 건 미는 거지”


그런데 나는, 그렇게 헷갈린다.

“당기시오”와 “미시오”

가끔 문 앞에서 고민할 때도 있다.

이게 미는 건가 당기는 건가.

여하튼 나는 급한 성격에 아무렇게나 들어갔다가 문에 거부당한 것이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면 엘리베이터 버튼에 보호 필름이 붙여져 있다.

그 필름의 사용감을 보면 어떤 층이 가장 많이 눌렀는지 본의 아니게 알 수 있는데, 우리 동에서는 4층이 가장 너덜너덜하다. (=가장 많이 누름)

외출도 잘 안 하는 우리 집인데. 이상하다.

그것 또한 나 때문이다.


“한 번만 눌러”

남편이 말했다.

아니, 엘리베이터는 왜 이리 닫히는 속도가 느린가.

나도 모르게, 손톱까지 사용해서 닫힐 때까지 누르고 있었다. 습관이자 급한 성격 탓이다. 세상에.


자판기 커피는 당연히 못 기다린다.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문을 열고 종이컵을 노려보고 있다.


버스도 그렇다. 분명 정차 후에 일어나서 안전하게 내리라는데 나는 미리 서 있다. 왠지 정차 후에 일어나면 내릴 때 카드도 못 찍을 것 같고, 뒷문이 닫힐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연애 때도 그랬다. 성격이 급해서 밀당이란 내 사전에 없었다. 이 사람이다 싶으면, 그냥 당겼다. 그래서 남편을 당겼고, 남편은 끌려왔다(?).


그런데 내 남편은 나의 행동과는 정 반대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느긋하고, 버스도 정차 후 내리고, 자판기 커피는 오히려 커피가 남편을 기다린다. 나 좀 가져가라고.


이런 정 반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만났는지 의아하다.


남편은 나에게 지적도 잘 안 하는 편인데, 오늘은 은행 문에 부딪히는 걸 보고는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아주 근본적으로 마음을 좀 편안하게 놓았으면 좋겠어. 네가 바빠서 마음이 조급한 건 이해하지만, 마음이 느긋해야 뭐든 순서대로 차근차근할 수 있다고 생각해.

뭐든 멀리, 길게 봐야 하는 거야. 이런 작고 사소한 습관들이 모여서 언젠가는 진짜 낭패를 볼 수도 있어.”


(물론 이 말도 아주 천천히 했다)


“근데 왜 이런 성격의 나랑 결혼했어”

“네가 내 부족한 걸 채워주고 챙겨주니까. 성격이 급하니까 추진력도 있고 꼼꼼하잖아 너는. 대신 나도 네 부족한 걸 채워주고 챙겨주고. 톱니바퀴 같은 사이 같아, 우리는.”


톱니바퀴 같은 사이....

내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주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급한 내 성격을 고쳐보려고 노력해야겠다.

......... 그나저나 언제부터 고치지? 빨리빨리 고쳐야 하는데.



아.... 성격 고치는 것도 “빨리빨리” 할 생각부터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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