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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Jan 25. 2021

나의 “피자 한 조각”은 무엇일까.

SOUL: 산다는 것 그 자체가 곧 의미였다.


1년 만에 극장을 간 것 같다.

개봉작이라 아직 집에서 볼 수가 없었지만 인사이드 아웃을 엄청 흥미롭게 봤기 때문에 꼭 보고 싶던 영화였다.


극장 안에는 나 포함 10명 정도 있었다.

아이를 위해서 더빙을 고른다는 것을 그만 자막으로 잘 못 구입한 탓이다. 가족 관객들은 모두 더빙 쪽으로  몰려갔다. 이게 좋은 일인지 아닌 건지.





왜였는지는 모르겠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나는 눈물이 났다. 마치 나를 토닥토닥, 이미 잘하고 있다고 위로해주는 기분이었다. “22번”과 “조”가 나의 삶의 이정표가 된 채로.

나를 위한 영화였다. 쳇바퀴 돌듯 무표정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마음이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한, 그래서 나를 위한.


나는 막내딸로 자랐다. 칭찬인지 욕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들마다 나를 보면 “너 막내지?”라고 물어봤다. 난 그저 해맑았다. 솔직히 어릴 때는 부모님이 내 그늘이 되어주셨다. 나는 부모님이 놓아준 푹신한 의자에 그저 앉아만 있으면서 부모님이 온몸으로 만들어 준 그늘로 비바람과 더위를 피하고 산들바람이나 솔솔 맞으며 살았다.

넉넉하진 않아도 내가 원하는 건 모두 해주려고 노력하셔서 어느 정도 누리고 살았고, 그래서 희생이나 좌절, 인내 같은 단어들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어렸을 때의 나는 그냥.. 나 자신이 아니라 방관자였다. 제2의 내가 나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부터 그 단어들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내가 판단하고 행동해야 했다. 이제 내가 아이에게 그늘이 되어줘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래, 버거웠다. 늘 수동적으로 누가 해주던 걸 누리고, 편하고 단순하게만 살다가 내가 주축이 되어 살림도 꾸리고, 뭔가를 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힘들었다. 버거웠다.

뒤늦게 깨달은 어른이라는 무게가 내겐 맞지 않는 옷 같았다.


소위 말하는 “현타”도 이때 느낀 것 같다. 어쨌든 하나하나 이뤄가고 해 나가면서, “도대체 난 여태 뭘 하고 살았지? 왜 그렇게 살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해 놓은 게 하나도 없는 것 같고, 한심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점점 더 조급해져 갔다. 내가 내 가정을 위해 세워야 할 올해 또는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아이를 위한 계획은 무엇이고 엄마나 아내로서의 내가 아니라 그냥 나 다움을 찾고 싶은데 그건 또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건지.

나는 내 삶에 목표와 이상향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 삶의 의미가 되므로, 의미 있는 하루하루를 살고 싶었다.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나”라는, 그 당연한 것도 너무 늦게 깨달은 이유다. 그래서 나는 흔히 10대 때 겪는 사춘기를 오히려 결혼 후에 겪었다.


그런데 “조”와 “22번”은 내게 목표를 세우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의 목표나 목적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말했다. 꿈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거나 꿈이 없어서 자책하는 사람들에게도 괜찮다고 토닥여줬다. 난 그래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너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말이 듣고 싶었나보다. 답정너처럼. 그럼에도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다.

어쩌다 시작된 “22번”의 삶은 삶 그 자체로 훌륭하고 매 순간 즐길 거리로 넘쳐났다. 화창한 날의 빛나는 하늘, 푸른 나무들, 손끝에 닿는 바람, 따뜻하고 맛있는 피자 한 조각만으로도 인생을 살아갈 이유는 충분했다. 특히 피자를 난생처음 베어 문 “22번”의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나의 피자 한 조각은 무엇이었으며, 지금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무의미하게 보낸 것 같은 오늘도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빛난다는 것, 그것이 하나 남은 “불꽃”이었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나도 궁금했다. 하나 남은 그 “불꽃”의 자리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가야 하는 건지. 무엇이 결핍되어 지구로 가는 스티커를 받지 못한 건지. 그것이 대단한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나의 착각을 제대로 깨워주면서, 영화는 내가 걸어온, 걷고 있는 모든 순간에 대한 소중함을 알려줬다.

소소한 인생의 소중함을 이야기해주는 따뜻한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진짜 이야기는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꿈이 없어도 괜찮다. 꿈꾸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삶에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느끼고 그 자체로도 행복하다면.


삶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

그 “과정”이라는 날씨가 맑은 날이든, 흐린 날이든지 간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실수 투성이지만, 나만의 삶을 오롯이 살아냈기에 나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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