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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May 13. 2021

비비디 바비디 부



운전을 시작한 지 3~4개월이 넘었다.

사고는 치지 않았고, 덕분에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뉴스에 나오는" 일은 없었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다.

먼 곳을 혼자 운전을 하며 나가기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주차장에서 잠들어 있는 차를 굳이 놔두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현타가 오기도 했고, 꼬불꼬불하게 돌아 나오는 구조가 무서워서 일부러 안 가는 특정한 길도 있다.

그리고 여전히 주차는 어렵다. 특히 주차를 할 때는 주변을 아주 유심히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연속으로 두 개가 반드시 있어야 주차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차와 차 사이에 자리가 있더라도 그 자리에는 절대로 주차를 할 수가 없다. 나는 내 차와 아직도 어색한 사이이며, 아직도 차폭감을 모르겠고, 따라서 그 자리에 주차를 한다면 사고를 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남편은 사고를 쳤다는 천진난만한(?) 내 전화를 받고 아직 덜 나아서 절뚝거리는 다리로 분노의 달리기를 하며 집으로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 아이는 요즘 디즈니에 푹 빠져선, 차만 타면 디즈니 영화 음악을 틀어달라고 한다. 아이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학원으로 향했다.

'비비디 바비디 부'가 나온다.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이 그녀를 위해 쓴 마법의 주문이다.

주차장을 나서면서 또 버릇처럼 주차장 자리를 유심히 본다. 연속으로 비어있는 자리가 몇 개 있다.

오호라, 오늘은 마음을 놓고 주차를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기분 좋게 아이를 데려다주었다.


그런데 이게 머선 일이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까의 그 넉넉하던 주차공간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 아파트의 주차장은 한 블록 당 3대씩 주차를 할 수 있게 되어있는데, 얄밉게도 꼭 중간에만 자리가 있었다. 한 바퀴를 천천히 돌던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야, 당황하지 말고 2층으로 내려가자.


나는 조심조심 2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2층에도 자리가 얄밉게도 군데군데 있었다. 그것도 딱 중간자리만.

결국 나는 마지막 층인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평소 대낮에는 텅텅 비어있는 지하 3층 역시 거의 만석이었다. 게다가 그나마 남아있는 자리도 딱 중간자리들 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차를 몰고 나간 후 그 시간에 지상 주차장에 크랙 공사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상의 차들이 모두 지하로 들어간 까닭에, 지하 주차장에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상 주차장은 공사로 인해 막아놨고, 지하 주차장은 중간 자리만 있던 것 마저 점점 자리가 차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냥 남은 자리를 찾아서 주차를 해야 했다. 게다가 차들이 계속 지하로 몰려들고 있었으므로, 계속 주차장을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정신 차리자.


나는 차 안에 있던 사탕을 급하게 입에 털어 넣고,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괜찮아"를 수십 번 되뇌었다. 그리곤 구석 중간 어떤 자리에 주차를 하기로 결정하고 그쪽으로 차를 몰았다. 유튜브에서 봤던 주차의 달인 동영상이 머릿속에 아주 빠른 속도로 스캔되기 시작했다.

어깨를 반 정도 걸치고 차를 반대쪽으로 돌린 후 후진......

음악은 트랙 한 바퀴를 어느새 돌아, 다시 "비비디 바비디 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발 들어가게 해 주세요.


머릿속에는 음악처럼 "비비디 바비디 부"라는 간절한 기도가 주기도문처럼 외워지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과 소원이 실현된다는 이 희망과 믿음의 주문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무교인 내가 이렇게 믿음과 기도가 강한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당연히 한 번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게다가 옆엔 아주 비싼 외제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눈에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자꾸 맺혔다. 나는 전진과 후진을 수십 번 반복하면서 결국, 정중앙 자리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하도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더니 브레이크에서 삐걱 소리가 났다. 차가 아주 뜨거웠다. 하지만 내 체온보다는 덜 뜨거웠을 것이다. 정신이 혼미했다. 나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나와 주차된 모습을 바라봤다.

세상에, 내가 양 옆 차들 사이에 주차를 하다니. 그것도 남편도 없이.

나는 지하 3층 주차장에서 혼자 토끼춤을 추며 집으로 올라갔다. 주차를 한 사진을 보고 남편은 귀엽다며 연신 “ㅋㅋㅋㅋ”를 보냈다. 아마 정신적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내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차를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못한다고 지레 단정지은 게 문제였다.

못하는 게 아니라,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내 두 눈을 가리고 두 귀를 막고, 사고를 정지시킨 것이었다.

어차피 안 될 거니까.






사실 생각해보면, 살면서 실패를 맛봤던 일들은 결국 나의 걱정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랑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이 시험을 망치면 어떡하지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이게 안되면 어떡하지


누구나 새로운 일 앞에선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겠지만, 그래도 그것들을 조금만 더 가볍게 내려놨다면 내 삶의 어떤 작은 조각은 분명, 결과가 바뀌었을 것이다.


주차장에서 노랫말처럼 외치던 나의 "비비디 바비디 부" 역시, 안되면 어떡하지 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이미 내포되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 날이다.



사실은 할 수 있었는데.

가능한 일이었는데.

조금만 생각을 바꿨어도 괜찮았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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