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할머니를 미워했다. 하지만 미안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할머니도 나를, 내 언니를 미워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7남매 중 네 번째로 태어났다. 7남매 중 유일한 딸은 두 번째로 태어난 고모였는데, 고모를 낳던 날 할머니는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딸을 낳았다고.
7남매는 어느덧 다 자라서 각자의 가정을 이루었는데,
유일하게 우리 집만 아들이 없다.
엄마는 언니를 낳고 “쓸데없는” 딸을 낳았다며 할머니께 온갖 구박을 당했다. 산후조리는 꿈도 못 꾸었다.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할머니가 태몽을 꾸었는데, 무려 용꿈이었단다. 무지갯빛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었는데, 분명 이번에는 아들이라고 기뻐하셨단다. 엄마도 그렇게 꼭 믿었고, 믿고 싶었다. 할머니 때문에 눈칫밥을 너무 먹어, 아들이 너무 낳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가 나를 낳던 날, 엄마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이후에도 계속 한 명만 더 낳으라고, 셋째는 반드시 아들일 거라는 이유 없는 믿음을 가지고 엄마를 괴롭혔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아들 타령을 하며 딸만 있는 엄마를 은근히 무시하고, 속을 긁었다.
엄마와 아빠는 셋째를 낳을까 고민하다가, 과감하게(?) 시어머니의 요구를 무시하고, 언니와 나를 애지중지 키워주셨다.
이 이야기는 내가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엄마의 이야기 중 하나다. 그날도 엄마는 무릎에 나를 눕히고 귀를 파주며 그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문득 나는 궁금했다.
“근데 엄마, 왜 셋째는 포기한 거야? 진짜 셋째가 아들이었을 수도 있잖아.”
“셋째가 딸이든 아들이든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너희들이 소중하다는 거지. 내 아이들이 성별로 차별받는 것도 싫었고, 그래서 더 보란 듯 바르게 잘 키우고 사랑해주며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구박을 받은 것을 알기에, 나는 그 대답이 슬펐다.
나는 삼 형제 중 장남과 결혼했다. 그런데 이 집은 대대로 딸이 귀한 집이었다. 시아버님은 딸이 너무 갖고 싶었는데 아들만 내리 셋을 갖게 되자, 어느 날 장에 가서 막내에게 여아 옷과 신발을 사 신겼다고 한다. 이런 여아의 옷을 너무 사보고 싶었다며. 덕분에 우리 도련님은 남자임에도 꽃이 달린 분홍색 구두를 신어보셨단다.
이 이야기는 내가 시어머니께 결혼 전부터 듣던 스토리다. 손녀가 갖고 싶으시다며.
동서들은 아이들이 모두 둘인데, 둘 다 아들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나만 딸을 낳았고, 외동이다.
아이를 가졌을 때 임신 초기에는 초음파 상 아들로 보였던 내 딸은, 16주가 되어서야 반전을 보여주었다.
딸 하나만 원하던 나와 남편은, 병원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하며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던 그 순간,
“.......... 아들아, 넌 안 서운하냐.....?”
카페 옆 테이블, 어린 딸을 가진 젊은 엄마가 아들 타령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속이 탄다며 하소연하는 걸 듣고 있으니 내 속이 더 탄다. 요즘은 여아를 더 선호한다고도 하지만, 아직도 몇몇 어른들은 남아를 더 선호하는 게 공공연한 사실인가 보다.
사실 씁쓸하다. 성별이 뭐가 대수인가. 예쁘게 낳아서 바르게 잘 키우면 그것으로 된 거지.
딸이라서 서운해하고 아들이라서 기뻐하고.
딸이라서 기뻐하고 아들이라서 서운해하는
그 감정 자체가 이해 안 되는 부분이다.
아들을 낳았다고 딸을 종용하는 집들도 있다지.
내 상식 선에서는 이해 불가다.
사실 내가 딸 하나로 가족계획이 끝났음을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엄마 아빠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 장남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엄마는 본인이 구박을 많이 당했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하셨다. 나는 엄마 아빠의 그 걱정하는 얼굴이 싫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의 그 말을 들은 이후, 반발심이 아주 없진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가족계획에 그것이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본인들도 성별이 여자임에도, 여자라는 성별을 서운해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나는 내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운데, 어머니는 왜 서운하셨을까. 아버님이 그토록 사고 싶어 한 꽃 구두를 내 아이는 신을 수 있는데.
다음 주 아버님 생신에는 아이에게 꽃 구두를 신겨서 뵈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