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그냥 싫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싫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와 나는 거의 마주친 적도, 대화를 나눈 적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를 잘 모르고, 그 역시 나를 잘 모른다. 그런데도 그를 떠올리면, 아주 싫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만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그가 싫었다. 그 자리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그가 있는 그곳에 쏟아야 하는 것이 아깝고 억울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나가야만 했고, 그를 마주쳐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괜찮고 좋은 사람이었다.
다정하게 안부를 물어주는 그의 눈빛에서 아주 순수한 따뜻함이 묻어났다. 아주 추운 날, 바깥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가 갑자기 엄청 따뜻한 장소에 들어간 것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온 몸이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날, '그냥 싫은' 그와 꽤 길고 오랜 대화를 나눴다. 그와의 대화는 정말 즐거웠다. 생각도 가치관도 어느 정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배려해주는 그의 행동과 말들이 고마웠다.
이상했다. 그는 분명 '싫은 사람'이었는데.
오히려 그가 평소 내가 그를 싫어했다는 걸 알게 되면 어쩌지, 싶을 정도로 평소의 나를 부정하고 싶었다.
이상할 정도로 신선하고도 불편한 시간이었다.
나는 왜 그가 싫었을까.
나는 그의 소식을 늘 그녀에게 듣곤 했다.
그녀는 내게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그의 소식을 가끔 들려줬는데, 한 번도 긍정의 언어로 그를 표현하지 않았다. 그의 소식 속에는 언제나 그녀의 원망과 미움과 서운함이 묻어있었다. 그녀는 그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리워하지 않았고, 궁금해하면서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를 향한 그녀의 말들은 늘 애매모호했다. 가시 같은 말들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나는 그와 안면이 거의 없었으므로, 그녀의 말을 그렇게 귀담아듣지는 않았지만 흘려듣던 그 말의 조각들이 머릿속에 소복소복 쌓여 결국 세뇌가 되어버렸다.
오렌지는 누가 봐도 주황색이고, 겨울 다음엔 반드시 봄이 오는 것처럼, 그는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는 그런 생각.
좋은 말을 하고 예쁜 생각을 하는 자를 가까이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렇게 물들어간다.
세 뇌라는 건 참 무섭다.
그래서 나는 다음 주에 그를 또 만나기로 했다.
전혀 다른 눈과 전혀 다른 감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