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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Feb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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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부모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며 행운인가, 문득 생각해본다.

잠이 오지 않아서 불을 다 끈 채 두 눈만 알사탕처럼 굴리고 있는 이 밤. 너무 짧아 아쉬움이 절로 토해진다. 시계 초침 소리만 요란하다.

나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좋겠다고, 문득 유치한 생각도 해 본다. 그렇다면 시간을 며칠만 붙잡고 싶은데.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으니 조용히 다가오는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 그리고 집에 가야 한다.

익숙한 낯섦이 가득한 이 곳.

나는 지금 친정에 있다.


딸은 귀여운 도둑이라고 했던가. 아빠는 내가 집에 오면 뭘 이렇게 많이 가져가느냐고 투덜(?) 대지만, 사실은 가져가라고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장을 보신다. 이유는 단 하나다. 서울 물가는 너무 비싸다는 것. 제일 많이 사놓는 것은 양파나 감자 같은 채소들인데, 가끔은 대형마트에서 세일하는 섬유유연제 같은 생필품들도 사놓으신다. 그것도 이유는 단 하나다. 나 가져가라고. 엄마가 그런 것 까지 사놓을지는 생각도 못 했다며, 딸바보라고 흉(?)을 보셨다.

그러니까, 내가 온다고 장을 엄마랑 같이 보는 게 아니란다. 혼자 조용히 나갔다가 장을 봐서 들어온다는 것이다. 또 뭘 사 왔냐고 엄마가 버럭 하면 아빠가 멋쩍게 웃는데, 나는 그런 아빠가 참 귀여웠다. 내가 집에 오면 아빠는 뭘 사놨다고 자랑하기 바쁜데, 이번에는 제주도에서 공수해 온 감자를 자랑하셨다. 제주도 감자라 싱싱하고 달다면서, 꼭 가져가라며 신문지에 돌돌 말아놓은 그 모습이 귀여웠다.


그런데 내가 집에 오면 가장 좋은 건, 마음을 푹 내려놓고 쉴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걱정도, 스트레스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나는 그래서 이 곳이 좋다.


집에 들어서면, 온 집에 불이 켜져 있고, 난방이 켜져 있는 기분이다. 환하고 따뜻하다. 내 머릿속의 스위치가 딸깍, 하고 켜지는 느낌이다. 내 마음까지 환해진다. 해가 진 내 마음속에 다시금 아침이 오는 느낌이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면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진다. 매일 먹는 밥인데도 그리고 특별한 반찬이 없는데도 아주 꿀 맛이다. 이상하게 엄마가 차려주면 더 따뜻하다. 많이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배부르다.

엄마 아빠랑 수다 떨면서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고 늘어지게 소파에 누워 낮잠도 자고.

이건 엄마 아빠의 품이라서 가능한 호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흔한 풍경이지만 이 흔한 풍경이야 말고 사실은 가장 어렵고 그립고 평온한 모습 이리라. 평범하다는 것, 그것이 사실 가장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 곳이 좋다. 지극히 평범해서 좋다. 엄마 아빠가 평범해서 좋다.


집에 있으면 이것저것 해야 할 것도 많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도 많다. 나도 가끔은 누군가에게 투정도 부리고 응석도 부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 때문에, 나는 가끔 힘들고 외롭지만 어른인 척해야 했다. 그런 날들이 많았다.

마음에 불이 난 적이 많다. 어떻게든 꺼 보려고 혼자 발을 동동 굴렀지만 금방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오면 정말 거짓말처럼 불이 꺼진다. 어른이지만 가끔은 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해 주는 곳. 피터팬에게 네버랜드가 있었다면 나에겐 우리 집이 있었다. 집에 있다가 올라가면, 단 며칠간의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다시 일어날 에너지를 얻는다. 다시 내 삶에 집중할 힘을 얻는다. 아주 객관적으로, 집에 가면 뭘 딱히 하는 건 없다. 반대로 부모님도 내가 왔다고 뭘 특별하게 해 주시는 건 없다. 그럼에도 에너지가 생긴다. 신기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부모님의 힘이자 이 집이 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 나도 내 딸에게 이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어려울 수도 있다. 그만큼 엄마 아빠가 베풀어주시는 마음은 넉넉하고 깊어서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나도 부모가 되었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 아이에게 큰 풍경이 되어주는 것이자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것인데, 누구나 '부모'는 될 수 있지만 '좋은 부모'는 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부모라는 이름이 무겁다. 가끔은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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