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로즈데이
11년째 남편은 로즈데이에 내게 꼭 꽃을 선물한다. 큰 다발일 때도 있고, 작은 다발일 때도 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날에도 꽃을 선물하지만, 가끔은 아무 날도 아닌데 그냥 사 올 때도 있다. 그냥 지나가다가 예뻐서 샀단다. 언젠가는 홍대를 지나가다 꽃이 예뻐 샀는데, 지하철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꽃을 든 본인이 조금 민망했다고 했다. 쑥스럽게 웃으며 꽃을 내미는 남편이 참 귀여웠다.
결혼을 하고 나니 어떤 물질적인 선물보다는 이렇게 마음이 담긴 선물이 좋다. 예를 들면 가방이나 구두 같은 건 내가 직접 사러 가도 되지만(선 구매 후 통보) 내가 나를 위해 꽃을 선물하기란 생각보다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꽃은 오롯이 내가 상대방을 생각할 때 선물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나를 위해 꽃을 사려면 솔직히 망설여질 때가 많다.
열한 번째 로즈데이, 남편의 손에는 작은 장미꽃 두 다발이 쥐어져 있었다. 큰 다발보다는 작은 꽃송이 다발을 더 선호하는 내 취향을 잘 아는 남편이다.
나는 너무 고마워서 꼭 안아주면서 물었다.
"근데, 왜 두 다발이야?"
"하나는 우리 딸 꺼야. 작년에 엄마만 챙겨줬더니 삐치더라고. 그래서 올해는 두 다발을 샀어."
아홉 살 내 딸, 아빠한테 장미도 받고.
좋겠다 너는.
아빠가 내 남편이라서.
내 남편은, 소위 말하는 "츤데레"다.
가끔 남편과 다투고(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일이 많지만) 엄마한테 전화를 할 때가 있다.
“엄마, 나 오빠랑 싸웠어.”
그럼 엄마는 1초 만에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나 마나 네가 잘못했겠지. 이서방한테 잘해.”
엄마의 말에서 남편의 성품이 드러난다.
그렇다. 내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는 키만 싱겁게 커서는, 비교적 마른 체형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장과 넥타이를 매고 내 앞에 나타났다.
커피를 마시자고 카페에 가면 뜨거운 커피를 원샷을 하더니 다 마셨으니 나가자고 하던 사람이었고, 아주 맛있는 집이 있다며 첫 만남에 나름 차려입은 나를 데리고 아주아주 뜨거운 대구탕 집에 데려간 사람이다.
이렇게만 보면 참,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싶을 정도지만 나는 내 앞에서 모든 게 서툴고 어색한 그에게서 따뜻한 진심을 보았다.
검색하는 걸 비교적 귀찮아하는 성격이지만 아주 맛있는 걸 먹이고 싶어서 폭풍 검색을 하고 데려간 대구탕 집이었고, 카페에 마주 앉아 휴대폰을 보는 것보다 손을 잡고 함께 거리를 더 걷고 싶었단다.
지나가면서 저거 예쁘다, 하면 대꾸가 없다. 그런데 며칠 뒤 무심하게 그 꾸러미를 내민다. 오다 주웠단다.
그거 먹고 싶다, 하면 또 대꾸가 없다. 그러다 어느 날 그걸 꼭 먹자고 한다.
얼마 전 남편과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어디 어디에서 사 먹은 미숫가루 라떼가 참 맛있었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퇴근길에 그 먼 곳까지 가서 직접 사 온 적도 있었다. 비록 날씨가 더워서 얼음이 많이 녹아 아주 심심한 맛으로 변해버렸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라떼였다.
화도 잘 내지 않는다. 천성적으로 화가 없는 사람이다. 내가 사고를 쳐도(?) 화 한번 내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고쳐주고, 해결해준다.
출산 후 16키로가 쪄서 엄마가 구박을 했을 때도,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신나 있을 때도 남편만은 그때도 지금도 언제나 변함없이 예쁘다고 다독여주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을 챙겨준다. 그러면서 아무런 티도, 생색도 내지 않는다. 내가 고마워하면 조용히 그저 씨익 웃는다. 남편의 성격이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은 하지 않지만 그 마음 씀씀이는 드라마 주인공보다 훨씬 빛난다.
나를 언제나 빛나게 해 주는 사람.
세상에서 나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
내 자존감을 세워주고 철저하게 내 편이 되어준 사람.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늘 말해주는 사람.
가끔 엄마가 말한다.
“너는 무슨 복이 많아서”
그러게.
나는 무슨 복이 많아서 이런 남편을 만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