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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Jun 09. 2021

현실 자각 타임

나는 무얼 위해 살았을까


아이를 낳고 16kg가 쪘었다. 임신 중 10kg가 쪘었는데 출산 후 오히려 살이 더 찐 것이다. 살이 무섭게 찌고 나니 외적인 것은 둘째 치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숨이 가빴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라는 절반의 사실과 절반의 변명 그 사이에 있던 나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살이 찌니 아이러니하게도 외모에 부쩍 신경이 쓰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날 보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살이 쪘냐”는 말을 들으니 스트레스가 심했다. 옷을 그렇게도 많이 샀다.

그렇다고 다 입은 것도 아니다. 사고 옷장에 처박아놓고, 또 사고 또 처박아놓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옷을 사니 또 꾸미는 소소한 지출이 많아졌다. 화장품이나 가방 같은 것들. 아주 어이없는 짓이었다. 겉모습을 옷으로, 화장으로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다. 지출은 늘고 자존감은 줄어갔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겉모습이 문제가 아니었는데도.

내 건강과, 낮아져 버린 자존감을 신경 썼어야 했는데, 내 내면을 좀 더 들여다봤어야 하는데.

그저 내 눈에 들어온 건 겉모습 밖엔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건강검진에서 중성지방이 위험하다는 결과지를 받고 나서야 살기 위해 운동과 식이를 시작했다.

온전히 나를 위함이었다.


운동이라고 해봤자 거창한 건 없다. 집 앞 공원을 빠르게 두 바퀴 돌면 정확히 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밤에 아이가 잘 때 실내 자전거를 600칼로리에 맞춰놓고 탄다.

틈틈이 유튜브에서 홈트 동영상을 틀어놓고 홈트 기구를 몇 개 사서 스트레칭도 한다.

식이조절도 필수다. 나는 저녁을 먹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신선한 재료들로 abc 주스 같은걸 대신 만들어 먹는다. 이것저것 영양소를 엄청 따져 먹지는 않지만 재료 하나를 사도 신선하고 예쁜 걸 고른다. 물론 나를 위해.






오늘도 선선한 틈을 타 저녁에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공원을 오래 돌다 보면 저절로 낯이 익는 사람들이 있다. 비슷한 시간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딱히 서로 대화를 한 적은 없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서로 눈인사를 하면서 지나간다. 그 눈인사 하나로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빠른 걸음으로 걷기 운동을 하는 것만큼 즐거운 건 없다. 여름의 향이 가득한, 가로등 불빛이 그윽한 공원의 맛이란.


집에 돌아오니 아이는 잠이 들어있었다. 나는 시원하게 샤워를 한 후, 거실에 앉아 남편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곤 낮에 미처 끝내지 못한 소소한 집안일을 했다.

빨래가 건조기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거실에 그냥 드러누웠다. 베란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생각해보면 작지만 운동을 시작한 이후, 물욕이 사라졌다. 단순히 살이 빠져서 만족스럽다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내면에 신경을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달아서다. 나를 위해 건강을 더 챙기고, 나를 위해 간단한 음식 하나를 먹어도 예쁘게 플레이팅을 하고, 나를 위해 신선하고 예쁘게 생긴 야채를 손수 고르는 즐거움.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내게 필요했다는 걸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


전에는 택배를 하루에만 10개씩 주문하던 날들도 있었다. 무엇이 필요했던 걸까. 나는 무엇이 필요해서 물건을 산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이 허기졌던 것 같다. 자존감이 낮았던 것 같다. 불안해서 무언가를 자꾸 사고, 택배를 기다리는 희열을 느끼는 재미에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나를 위해 운동을 하고, 나와 내 가족에 충실하고 집중하니, 더 이상 남들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 자존감이 많이 높아진 것이다.

더 이상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게 되었고 내 삶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인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들의 이목에 신경 쓰느라 쓸데없이 옷을 사서 쌓아놓고, 신경을 쓰느라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살았다. 그것이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으니 두꺼운 겨울 점퍼를 벗어던지는 것처럼, 온 마음이 가벼워졌다.


저절로 물욕이 많이 사라졌다. 마음이 많이 채워졌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더 이상 허기지지 않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비록 창백한(?)지언정, 한결 편안하고 따뜻해진 표정이 꽤 만족스럽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산 걸까.

무엇이 내겐 중요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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