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사빛 Oct 19. 2021

나의 붕어빵의 계절

겨울은 싫지만 겨울이 좋은


일주일 사이에 사계절을 몽땅 경험했다. 불과 일주일 전 나는 캠핑을 떠났었는데, 가는 길에 어찌나 더운지 아이스 아메리카노 속 얼음을 우걱우걱 씹으며 차에서 짜증을 잔뜩 냈었다. 그런데 다음날 도로 가을이 오더니 갑자기 겨울이 와 지금은 경량 패딩을 입었다. 알 수가 없는 날씨다. 남편의 표현에 의하면, “나 같은 날씨”다. (변덕스럽다고)




날씨는 추운데 이상하게 단풍은 덜 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밟지 않으려 고무줄놀이하듯 걷던 나는, 아주 반가운 분을 만났다.


붕어빵 아주머니.


우리 동네는 이상하리만치 떡볶이나 붕어빵 같은 노점이 없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유일하게 딱 하나, 겨울마다 붕어빵 노점이 등장했다. 그것도 아이의 학교 가는 길에 있다. 이렇게 추운 날 맡는 붕어빵 냄새는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추운 건 싫지만,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너무나도 반가워 나도 모르게 아주머니께 크게 인사를 했다.


“어머 안녕하셨어요?”


“잘 지내셨어요?”


그녀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하굣길에 나는 아이와 함께 붕어빵을 사 왔다. 붕어빵이 가득 담긴 하얀 종이봉투를 쥐면 손끝까지 온기가 전해진다. 그 온기를 느끼면서 집으로 가는 길이 굉장히 설렌다. 나는 집에 오는 내내 아빠를 생각하며 걸었다.

어릴 적 아빠의 퇴근길 겨울 코트 안에는 늘 붕어빵 봉투가 있었다. 나는 붕어빵을 먹는 것도 너무 좋았지만, 그것을 보물 찾기처럼 아빠의 품에서 발견하고 봉투를 여는 그 순간들을 더 즐겼던 것 같다. 그만큼 붕어빵은 내겐 추억과 행복이 깃들어 있는 음식이다. 손에 쥔 붕어빵 온기에 그때의 아빠의 사랑이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붕어빵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겨울 찬바람과 함께 먹으면 그 달콤함이 배가 되는 것 같다. 아이는 슈크림, 나는 단팥을 좋아해서 함께 나눠먹는 것도 좋고, 따뜻하고 달콤한 붕어빵의 고유한 그 냄새도 좋다. 구워지고 있는 붕어빵이 등이 뜨겁다는 듯 뒤집혀지는 것도 귀엽다.



무엇보다 내가 붕어빵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떤 몽글몽글한 감정 때문이다. 아주머니와 크게 친분이 있지는 않지만 매년 겨울, 그 자리에 계시는 아주머니를 보면 벌써 한 해가 저물고 겨울이 오고 있다는, 시간의 빠름을 다시금 느낀다.

그래도 올 한 해 참 열심히 잘 살았구나 하는 소회와, 아주머니와 나 모두 무탈하게 살다가 겨울에 또 만났다는 왠지 모를 반가움과 뭉클함이 있다.


추워진 날씨에 투덜댔지만 대신 붕어빵을 조금 일찍 만나게 되는 행복을 얻게 되었으니, 겨울이 조금 일찍 온 것도 꽤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