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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Mar 15. 2022

아이가 내 품을 떠나간다


외동딸인 내 아이는, 어렵게 가진 아이인 만큼 나에겐 “원 앤 온리 (one and only)”의 존재다. 그래서 스스로 유난스럽게 키웠고 뭐든 베풀고 키웠다.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 줬다. 비록 내 생활비는 그만큼 줄었고, 가끔은 부족할 때도 있어 긴축재정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내 딸은 어릴 때부터 정말 엄마 껌딱지였다. 화장실을 갈 때 문을 닫으면 울면서 같이 따라 들어오고, 뭐든 나와 늘 함께 하고 싶어 했다. 10살인 지금도 하루에도 몇 번을 안아달라 업어달라 뽀뽀해달라 아우성이고, 10년째 아이와 인형놀이를 하면서 영혼이 탈곡되는 기분을 느끼는 중이다. 이런 생활이 10년, 나는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찌 그 크기를 가늠하겠느냐마는 아이는 컸고 그만큼 나는 세월을 직격탄으로 맞았으니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탓이다.


바깥을 나가면 가끔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모습을 본다. 간식도 사 먹고 학원도 같이 가고, 서로 팔짱을 끼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 모습, 놀이터에서 수다 떠는 모습들. 참 싱그럽고 풋풋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예쁘다 싶으면서도 우리 딸은 언제쯤 저렇게 친구들과 놀까 생각한다. 아니, 내 딸은 저렇게 친구들과 다니지 않을 것 같다. 그냥 평생 내 껌딱지로만 살 것만 같다. 기분이 좋지만 부담스럽다.




코로나 속에서 맞이 한 세 번째 새 학기. 이이는 기대 반 설렘 반 속에 등교를 시작했다.

물론 이번에도 나는 아이의 등하교를 같이 한다. 어떤 아이들은 혼자서 등하교를 하지만 횡단보도가 두 개나 있어서 아직은 혼자 보내기에 마음이 쓰인다. 아이는 아직 휴대폰이 없기 때문에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나서야만 마음이 놓인다.


새 학기 일주일 후, 어느 날 아침 아이가 나에게 등굣길을 보챘다.


“엄마, 오늘은 35분에 나가자.”

“왜?”

“아, 유정이랑 같이 학교 가기로 약속했거든.”


유정이는 아이의 같은 반 친구다. 일주일 사이 부쩍 친해진 이들은, 마침 집도 바로 옆 아파트인 것을 알고는 서로 엄청 기뻐했다고 한다. 하교를 같이하던 이들은 드디어 등굣길에도 같이 만나서 가기로 약속을 한 모양이다.


“유정이가 40분까지 신호등 앞에서 만나자고 했어. 그러면 나는 5분 일찍 나가야 도착하겠지?”


얼씨구.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잔소리 하나 없어도 스스로 세수를 하고 옷을 입는다. 신기(?)했다. 아침을 빠르게 먹은 아이는 나를 보채서 등굣길에 나섰다.


아, 나도 이제 아이의 하교와 등굣길을 집에서 배웅하는 날이 오는 것인가.

갑자기 설레면서 기분이 좋았다.


유정이는 이미 약속 장소에 도착해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발견하고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발을 동동 구르고 팔짝팔짝 뛴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마스크 속에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이는 내가 매고 있던 가방을 달라고 했다. 가방을 어깨에 매어주었더니, 잡고 있던 내 손을 뿌리치고 유정이의 손을 잡고 가 버렸다. 엄마는 더 이상 아이의 시야에 없는 것 같다. 둘은 아주 다정하고 씩씩하게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아이들의 뒤에서 조용히 따라 걸었다. 둘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둘이 학고를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굉장히 당황스러우리만큼 서운한 감정이 몰려왔다. 분명 내가 원하던 순간들 중 하나였는데, 막상 아이가 내 손이 아니라 친구의 손을 잡고 가버리니 서운하고 당황스럽고 쓸쓸했으며 민망하고 슬프기까지 했다. 마냥 아기 같던 내 아이가 “자랐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잠들기 전, 나는 아이를 토닥토닥해주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 너랑 유정이랑 학교 가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기특했지만 조금은 서운했어. 이제 네가 친구들을  좋아하는 시기가  건가? 엄마 손을 그렇게 뿌리치고 가다니..”


나는 입을 쭉 내밀었다. 그러자, 아이는 깔깔대며 웃었다.


“ 오구오구, 우리 엄마. 그랬쩌요? 손을 뿌리쳐서 미안해. 유정이가 반가워서 그랬어.”


그리고 아이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 엄마, 그래도 엄마는 내 평생 베스트 프렌드야.”


내 딸, 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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