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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Dec 16. 2022

9980원이 아까워서

나에게는 왜 자꾸 인색해질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장을 본다.


한 번은 주말에 보는데, 주로 다가올 일주일 치의 장을 크게 본다. 한 번 볼 때마다 15만 원 정도 드는 것 같다.

15만 원. 큰돈이지만 정작 집에 와서 냉장고에 정리하고 나면 별로 산 게 없다. 그렇다고 마트에 가서 사치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달걀이나 약간의 고기, 과일, 아침에 먹는 빵, 아이가 먹을 우유나 과자, 생필품 등을 사는 것뿐인데도 금액이 그렇다.

나머지 한 번은 그냥 그때그때 소소한 필요한 것들을 산다. 깜박하고 잊은 두부나 콩나물 같은.


물가가 너무 올랐다.

결혼한 지 12년, 신혼 땐 한 달 생활비가 35만 원이었다. 물론 아이가 없던 시절이라 가능한 금액이기도 했지만 어떤 달은 저 35만 원이 1-2만 원 남을 때도 있었다. 남은 돈으로는 소소하게 돼지 저금통에 넣었다가 간식이 먹고 싶으면 야금야금 빼 쓰는 재미도 있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가 없는 생활비다.


주말은 주로 큰 장을 보는 날이다. 나는 어김없이 가족들과 장을 보러 나갔다.

아이가 소고기 육전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소고기는 호주산임에도 자그마치 25000원이 넘었다. 갑자기 눈가가 떨리고 입이 바짝 말랐다.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 수만 가지 계산과 갈등이 핑퐁처럼 치고받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입이 짧은 내 아이가 그나마 잘 먹는 반찬이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그렇게 자주 해주지도 않는다. 고민하던 나는 결국 비싸지만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소고기를 카트에 넣었다.


남편은 모계 유전으로 당뇨가 있다. 한때는 당뇨 수치가 220까지 올랐던 남편은, 병원에서 당뇨합병증을 걱정할 정도로 심각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위해 식사부터 바꿨다. 심심한 나물반찬을 해주기 시작한 것인데, 식습관과 약을 병행하였더니 지금은 거의 정상수치로 떨어져 지켜볼 정도로 좋아졌다. 그래서 이번 주에도 나는 나물 반찬을 즐기는 남편을 위해 채소들을 골랐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나물들은 비싸다. 고사리, 시금치, 도라지를 골랐다.

남편의 당뇨는 내가 텃밭 분양을 받아서 채소를 키우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남편의 당뇨 수치가 굉장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눈으로 보고 나니 밥상에 더더욱 정성을 안 쏟을 수가 없다.


여기저기 마트를 한 바퀴 다 돈 것 같다. 나는 돌아다니다 냉동 코너에 있는 만두 꾸러미들과 눈이 마주쳤다.

요즘은 만두도 종류가 무척 많다. 브랜드도 꽤 다양하다. 그렇지만 가격도 꽤 올랐다. 몇 개 들어있지도 않은데 대부분 만원에 육박한다. 얼마 전 저녁을 먹으며 본 방송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맛집을 소개했었다. 나는 밥을 먹는 와중에도 침을 흘리며 다음에 만두를 꼭 먹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래서인지 만두 코너를 떠날 수가 없었다.


“하나 사요. “


남편은 말했지만, 나는 곧 고민하기 시작했다. 몇 개 들어있지도 않은데 가격이 9980원이다. 아.. 너무 비싸다. 물가가 너무 올랐다. 누군가는 그깟 9980원에 무슨 고민이냐고 하겠지만, 오늘은 소고기를 샀고 다른 장을 이미 많이 봤으며, 이달에는 유난히 많은 경조사들 때문에 “그깟” 9980원이 아니었다.


9980원.


이 돈이면 우유를 두 통 더 살 수 있고, 달걀을 한 판 살 수 있고(달걀은 왜 그렇게 또 비싼지..) 과일을 더 살 수 있고………


결국 나는 만두를 사지 않았다.




집에 오는 내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만두를 못 사서라기보다는,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그 자체가 짜증 났다. 가끔은 “나”를 먼저 생각해도 되는데 결국은 아이와 남편을 우선으로 생각하게 되는 내 뇌의 시스템이 짜증 났다. 아이와 남편에게는 “생각보다” 돈을 잘 쓰고 후회가 없는데 내가 쓰는 것에는 왜 계산부터 하게 되는건지, 그냥 사고 싶으면 사지. 계산하고 후회하고 고민하는 내 자신이 짜증났다. 좀 더 보태서 말하면 내 자신에게만 짜고 엄격하고 계산적인게 짜증났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하루하루 오르는 고물가가 짜증 났다. 가스비도 너무 올랐고, 안 오른 게 없다. 그렇다면 더 아끼는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런 시점에서 오늘의 만두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만약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요거트 뚜껑에 묻은 요거트를 핥아먹지 않고 과감히 버리겠다고.

나는 로또 1등이 되면, 고민하지 말고 만두를 종류별로사서 먹어야지. 그런 소소한(?) 사치를 누려야지.




다음날 퇴근길, 남편의 손에는 만두 꾸러미가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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