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표류기-3

3. 난독은 왜 생기는 걸까?

by 박평범

본인이나 아이가 난독 진단을 받았다면 그때는 아마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왜 나에게(또는 나의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 나 또한 허공에 대고 주먹질하고 싶을 만큼 답답하고 억울하고, 두려워서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과하게 불안해하거나, 엄마로서의 역할을 잘못한 것은 아닌지 자책할 필요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독은 ‘뇌 회로’ 때문이다.


난독으로 진단을 받으면 다음으로 시급한 문제가 치료방향인데, 이 과정에서 많은 학부모들이 잘못된 정보로 인해 뇌가 가장 말랑말랑한 만 10세 이전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안타깝게도 너무 많다. 나도 진단을 받은 후 정신나간 사람처럼 인터넷을 찾아보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다양한 센터들과 상담을 했다. 그 과정에서 뇌 훈련을 한다는 곳, 뇌파치료를 한다는 곳, 청각 훈련을 한다는 곳, 컴퓨터 화면을 보고 따라하는 운동치료를 하며 뇌의 반응속도를 향상시켜준다는 곳 등을 만나게 되었다. 어느 곳은 난독 학생의 뇌 그림을 보여주며 베르니케 영역, 브로카 영역이라는 곳을 설명해 주었는데 그런 전문용어를 들으면 메모해 두었다가 집에 와서 찾아보곤 했다.


정보는 쏟아지는데 갈피를 못 잡으니 불안감만 커져갔다. 이러다간 철이의 골든타임을 놓칠 것 같아 내가 직접 난독에 대해 공부하고, 치료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러다 발견한 책이 <난독증 이겨내기> (샐리 셰이위츠, 조나단 셰이위츠 저/정재석 옮김, 하나출판사). 내가 몇 번이고 완독하고, 치료의 고비고비마다 찾아보던 책이다. 이 책은 모든 난독인들이 필수로 읽어야한다고 추천하고 싶은, 현재까지 밝혀진 난독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카더라’ 치료의 유혹에서 벗어나 증거기반 지침에 따라 철이를 차근차근 공부시키기 시작했다.

<난독증 이겨내기>에 따르면, 난독이 처음 보고된 것은 불과 120년 전이었고, 그 전까지 난독인들은 그저 게으르거나 머리가 나빠서 글자를 읽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한다. 그러나 80년대 fMRI등의 기술의 발전에 따라 말하고 읽는 동안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혀짐에 따라 난독인들은 이런 오명을 벗게 되었다.

복잡한 이야기를 아주 간단히 하자면, 일반인의 뇌는 읽을 때 ‘초기 읽기 경로’와 ‘빠른 경로’를 이용한다. 즉, 처음 글자를 읽을 때는 ‘글자-음운-의미’를 각 단계를 거쳐 천천히 읽는다. 그러나 이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면 자동화가 되면서 ‘빠른 경로’로 큰 에너지 소모 없이 글을 읽게 된다. 마치 처음 자전거 타기를 처음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 좌뇌의 후두-측두 부분인데, 이 부분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글자-음운-의미’를 담당하는 뇌 회로들을 즉각적이면서도 조화롭게 통합한다.

그러나 난독인들은 뇌 회로를 조금 다르게 쓴다. 난독인들의 좌뇌 후두-측두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어찌된 일인지 일을 조금 덜 하는데, 그래도 읽긴 읽어야 하니까 그에대한 보상작용으로 뇌의 다른 부분, 이를테면 우뇌의 앞, 뒷부분이나 좌뇌의 앞부분을 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읽기의 첫 관문인 ‘글자를 보고 음운을 파악하기’를 위해 일반인들은 뇌의 앞쪽 영역(어려운 말로 왼쪽 배외측 전전두엽피질)를 사용하는데 난독인들은 이를 사용하지 못했다. 뇌의 이 부분은 ADHD의 원인으로도 지목되는데, 따라서 많은 난독인들이 ADHD를 동반하고 있는 것은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우리 철이도 포함된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겪어본 이들은 안다.)

<글을 읽을 때 일반인과 난독인이 쓰는 뇌 부분 출처:난독증 이겨내기 p.101>

자 이쯤에서 우리는 또 궁금하다. 난독은 유전인가?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인가? (엄마나 아빠 둘중 하나겠지) 일단 난독은 유전적 요소가 크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 중에 난독인이 있으면 자녀가 난독일 가능성이 다소 크다고 한다. 특히 자녀가 난독 진단을 받는 바람에 부모 중 한 사람이 자신도 난독임을 알게되는 사례가 왕왕 있다는데, 우리세대나 그 윗세대 때는 난독 진단을 위한 검사나 지식이 부족했으므로 일어날 법한 일이다. 그러나, 난독이 유전이든 아니든 치료법(특별한 읽기 훈련법)에는 변동이 없다. 그러므로 양가 집안을 들쑤시며 누가 읽기 문제를 가졌는지 알아내면 무얼할 것인가. 늘어나는건 부부싸움 뿐이므로 그 에너지를 아이의 읽기 훈련에 좀 더 집중하도록 노력해보자.


이제 우리는 난독인들의 뇌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읽게'끔 도와주어야 할까? 조금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 단언하건데, 그건 끝이 안보이는 대장정이다. 자, 안전벨트 꽉 붙들어 메시고, 난독의 바다로 함께 출발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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