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 표류기

2. 언제, 어떻게 난독인걸 눈치챘나?

by 박평범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난독 진단이 흔치 않은 만큼, 철이의 난독증을 고백하면 어떻게 난독증인지 알았는지 묻는 말이 대부분 뒤따라온다. 나의 경우 성인과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었고 특히 학원을 운영하던 시절 강사들이 가르치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불러 원장실에서 1:1로 가르쳤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철이와 미애가 5세(우리나라 나이로)가 되며 나는 본격적인 센터 라이딩 생활을 위해 일을 관두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동안 뒤처진 발달을 따라잡기 위해 쌍둥이 모두 각각 언어치료, 놀이치료, 감각통합치료를 시작해서 일정이 고3 못지않게 빡빡했다.

자연스레 학습에도 관심이 더 생겨서 책이나 교구를 공동으로 구매하는 맘카페도 전보다 자주 들어가게 되었는데 글쎄 다른 집 아이들은 5세인데도 숫자를 척척 세고 심지어는 두 자리, 세 자리 숫자도 읽는 것이 아닌가! 때마침 코로나로 어린이집을 못 가는 날이 많았기에 나는 철이와 미애를 앉혀놓고 이것저것 시켜보았다.


우리 아이들 수준에 한글은 언감생심이었기에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숫자부터 가르쳤다.

며칠 동안 벽에 숫자 포스터를 붙여놓고 1은 하나, 2는 둘 이런 식으로 가르치니 미애는 곧잘 숫자를 세고 읽기도 하였다. 그런데 철이는 아무래도 이상했다.


나: (숫자 1을 가리키며) 철이야, 이건 뭐야?

철이: ‘.......’

나: (숫자 2를 가리키며) 철이야, 이건 어떻게 읽어?

철이: ‘.......’

아우 속터져! 그러나 바둑알 세는 걸 시켜보면 곧잘 하나, 둘, 셋, 넷 이런 식으로 소리를 냈다.


나: 철이야 1이 하나야, 2는 둘이고. 그럼 3은 뭐야?

철이: ‘.......’ (셋이라는 대답이 안 나왔다)

일단 철이를 포기하고 다시 미애에게 다가가서 바둑알 3개를 놓고 하나를 빼며,


‘미애야 사과가 3개가 있었어, 근데 엄마가 1개를 먹었어. 그럼 사과 몇 개가 남아?’

근데 옆에 철이가 대뜸 ‘두 개!’라고 대답했다.


뭐야? 모르는 게 아니었어? 그래서 다시 시도해보았다.


나: 그럼 철이야. 집에 사과가 4개 있어, 그런데 엄마가 마트에서 사과를 1개 더 사 왔어. 그럼 사과가 모두 몇 개야?

철이: 응, 그럼 다섯 개!!

뭔가 이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더니... 그래서 다시 물어봤다.

나: (숫자 3을 가리키며) ‘철이야, 이건 뭐라고 읽어?’

혹시나 ‘읽어?’를 못 알아들었을까 봐 다시 물어봤다.

나: (다시 숫자 3을 가리키며) ‘철이야, 얘는 이름이 뭐야?’

철이: 여전히 묵묵부답


혼돈의 카오스였다. 그러니까 철이는 몇 개인지, 심지어 간단한 덧셈, 뺄셈의 개념은 알고 있지만 그걸 숫자 이름(기호)과 연결을 못 시키는 것이다.


문득 예전에 가르쳤던 경계성 지능 학생이 생각났다. 그 학생의 엄마가 ‘우리 아이는 입력과 출력이 원활히 안 된다’ 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럼 우리 철이도 그런걸까?


이건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 전문가의 영역인 것 같아서 아이가 그 당시 다니던 집 근처 언어치료 선생님께 물어보았지만 ‘아직은 어리니 조금 더 두고 보자’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도 가만있을 수는 없어 집 근처 믿을만한 소아정신과를 수소문했다. 소아정신과에서 전반적인 인지(지능), 정서, 사고 능력들을 확인할 수 있는 ‘풀 배터리’ 검사를 받아보고, 지능 문제라면 학습에의 접근 방법을 달리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검사 예약 날까지 오래 기다려야 했기에 그동안은 유명하다는 언어치료센터에서 언어에 관련된 검사만을 따로 받기로 했다.


그리고. 2020년 11월 전반적인 언어평가를 받아보았다.

다행히 지난 10개월간 언어치료를 받은 덕인지 수용언어(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와 표현언어(다른 말로 화용 언어, 즉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는 대충 정상 발달 영역에 들어왔지만 <아동용 발음평가>에서는 하위 1%가 나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조음(발음) 문제가 있을 경우 난독으로 이어질 확률이 꽤 크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음운(소리)인식 때문인데, 이건 차차 알아가도록 하자.


그리고 그 당시 나의 큰 우려는 철이가 글자 소리와 글자 자체, 그리고 글자의 의미를 연결하는 게 어딘가 어색한 것이었는데, 이 ‘소리-의미-기호’의 연결은 두고두고 철이에게 큰 숙제였고, 훗날 철이가 한글 난독에 이어 영어 난독 중재를 시작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철이의 소리(음운)인식이 난독 때문인 것은 아직 알 수 없다고 했고, 나중에 한글을 배울 때 소리를 결합하는 것, 즉 ‘가 + 이응 = 강’을 못하면 그때쯤 난독 검사를 다시 받아봐야 정확하다고 했다.

조음(발음)치료도 물론 받아야하지만 일반 언어치료보다 훨씬 고되고 힘든 과정이기에 적어도 6세 후반에 다시 와서 치료를 받아보자고 했기에 일단 그날은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계속 일반 언어치료에 매진했다.

물론 발음 문제가 있다고 모두 난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미애는 철이와 똑같이 언어 지연과 발음 부정확 문제가 있었지만 한글도 스스로 깨우치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보통의 아이로 성장했기 때문에 아이의 말이 어눌하다고 해서 미리 난독일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학습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만일 ‘소리-의미-기호’ 이 세 개가 원활히 연결되지 않는다면 한 번쯤은 전문적인 기관에서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철이는 추후 실시한 풀 배터리 검사에서 지능이 정상 수준으로 나와서 인지치료 등의 다른 치료는 받지 않고 일반 언어치료만 죽 받다가 6세가 되면서 조음치료를 1년간 받고, 7세부터 본격적인 난독 중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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