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다정한 목격자 >
* 이 글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한참 전에 개봉한 ‘3일의 휴가’라는 영화다.
신민아, 김해숙 주연의 영화다.
적당한 신파가 존재하는 영화겠거니, 하지만 배우는 좋고,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봤다.
줄거리는 이렇다.
“ 따님은 어머님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요. 휴가 동안 좋은 기억만 담고 오시면 됩니다.”
죽은 지 3년째 되는 날, ‘복자’(김해숙)는 하늘에서 3일간의 휴가를 받아 규칙 안내를 맡은 신입
‘가이드’(강기영)와 함께 지상에 내려온다. 미국 명문 대학교 교수인 자랑스러운 딸을 볼 생각에 설레던
마음도 잠시, 돌연 자신이 살던 시골집으로 돌아와 백반 장사를 시작한 ‘진주’(신민아)의 모습에 당황한다.
속 타는 엄마의 마음도 모르는 ‘진주’는 자신을 찾아온 단짝 ‘미진’(황보라)과 엄마의 레시피를 찾아가고,
낯익은 요리를 보자 서로의 추억이 되살아나는데…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다.
엄마가 생각하는 ‘사랑’과 딸이 기대하는 ‘사랑’이 너무 다르다.
엄마들이 흔히 하는 말, ‘널 위해서 그랬어.’
복자 또한 자신보다 나은 환경에서 딸 진주를 키우고 싶었다.
자신과 함께하면, 진주의 미래도 뻔했다.
교사인 남동생 내외에게 진주를 맡기고, 자신은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다.
진주의 대학은 물론, 유학까지 보내준다는 말이 복자에겐 동자줄 같았을 거다.
하지만, 진주가 원하는 것도 그런 것이었을까?
왜, 부모는 아이에게 묻지 않을까? 선택권을 주지 않을까?
진주는 그저, 엄마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것이 어떤 곳일지라도.
그렇게 서로 오해가 쌓이고, 둘 사이엔 거리가 생겼지만, 시간은 내편이 아니다.
결국, 복순은 죽어서야, 진주를 찾아오게 되었다. 3일의 휴가를 얻어.
영화는 진주가 직접 요리하는 모습들을 통해 군침을 자극하는가 하면,
아, 저런 어머니의 삶도 어딘가 있겠지 싶은, 어디선가 본 거 같은
기시감을 준다.
오직 자식 하나만 바라보고, 자식 하나 잘되라고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는
수 없이 많이 봐본 어머니의 이미지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영화를 정주행 하게 하는 힘은 있다.
그건, 배우들의 힘과 절제 있는 연출의 힘이라 본다.
주연배우와 조연들까지, 소모되는 배우는 없다.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주연을 맡은 신민아는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우울증에 걸린 엄마역을 너무 잘 소화했는데
연장선에서, 많은 감정을 품은 진주역을 훌륭히 해낸다.
사랑스러운 연기도 독보적인데, 이런 연기도 너무 잘 어울린다.
나 또한 엄마로 16년째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딸과 대화를 하다
‘기대하기 때문에 서운함도 있다’는 딸의 말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 기대치를 올려준 건 나 자신이다.
사람은 누울 자릴 보고 발을 뻗는다고, 아무한테나 기대하진 않는다.
물론, 부모니까 당연하게 기대하고 바라는 것도 있다.
영화를 보며, 살아있는 이 생에서.
나는 어떤 엄마로 남고 싶은가를 다시 생각했다.
기대치는 내가 높이는 거라고 말은 했지만, 난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라
사랑을 표현하는 걸 숨기진 못할 거 같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이만큼 했는데’ 하면서 바라고 싶진 않다.
예전에 읽은 책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누구에게 줄 때, 이걸 줬을 때 어떤 반응이 있길, 상대도 무얼 해주길
조금이라도 바란다면 하지 않는 게 낫다는 말이었다.
"조건 없는 사랑"
그리고, 조금은 담백한 관계가 되고 싶다.
만약, 내가 죽고 영화에서처럼 3일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내가 좋은 걸 하며 보내는, 어떤 미련이 남아 그걸 위한 시간을
보내기보다,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그런 나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