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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Oct 03. 2024

선자령 백패킹

< 욕구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



집 떠나면 개고생?    

 

선자령에 백패킹을 다녀왔다.

4년 전 굴업도에 이은, 두 번째 백패킹이다.

백패킹은 날씨가 중요하다. 특히, 선자령은 바람을 꼭 체크해야 한다.

다행히 비 소식이 없던 금요일, 선자령으로 출발했다.

선자령은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다.

당직을 하고 온 남편도 가고 싶었던 곳이어서 그런지 피곤한 기색 없이 들떠있었다.

휴게소에서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여유롭게 대관령에 도착했다.

1시간 코스인 한국공항공사 강원항공무선표지소에 주차를 하고, 무거운 가방을

짊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설렘, 그 자체였다.

백패킹 장소로 향하는 선자령 숲은 마치 제주도의 숲을 연상시켰다.

오래된 나무들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기다 안개가 자욱해서 신령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3분의 1쯤 올랐을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를 확인하니 일기예보가 바뀌고 있었다. 

조금 내리다 말겠지 했던 비는 선자령 비박 장소에 도착할 때쯤 되니 폭우로 바뀌었다.

우린 농담 삼아 늘 ‘우리에겐 날씨요정이 있다’고 말해왔었다.

어딜 가든, 늘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태풍의 영향권에 있다는 예보가 있을 때에도

우리가 여행을 갈 때쯤 되면 태풍이 지나가고 날씨가 좋았었다.

그런데, 예보에 없던 비는 당황스러웠다. 선자령이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너무 자만했던 걸까.

거기다, 온도 차가 매우 큰 대관령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추위가 문제였다.

우비를 놓고 온 나의 실수였다.


비를 피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우선 비를 피할 텐트를 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 사이, 남편도 나도 옷이 점점 젖어가, 추위에 바들바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려움이었다.

간신히 텐트를 치고, 좁은 텐트 안에 들어가니,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비를 피할 이 작은 공간만 있어도 이렇게 행복하구나 싶어, 새삼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살아왔던 건가부터, 들고양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등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비가 그치면, 텐트 하나를 더 치자하고, 우리는 텐트 안에서 준비해 온 음식과

근처에서 사 온 막걸리를 마셨다. 비가 와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맛있다니.

기분 탓인지, 뭔지, 막걸리가 꿀맛이었다.

비는 그칠 줄 몰랐고, 그 작은 텐트 안에서 도란도란 대화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빗소리와 풍차 소리가 섞여 마치 기이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들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귀마개는 신의 한 수)



다시 오고 싶은 선자령     


선자령의 아름다운 풍광은 아침에서야 볼 수 있었다.

이래서 백패킹 성지구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일찍 출발했는지, 이른 아침부터 백패킹 장소에 도착한 분들도 꽤 있었다.

비가 오지 않은 날, 꼭 한 번 다시 오자고 약속하며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 등산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네주는 분들이 많아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은 참 크다.     





사실, 백패킹을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다.

화장실도 없고, 번거롭고, 힘들고, 그걸 왜 하고 싶을까?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처음 굴업도에 갔을 때 힘들게 언덕을 오르자 펼쳐진 수크령 길에

감탄했다.

수크령과 바다를 보며 걷는 기분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걷는 걸 내가 좋아했구나’는 새삼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백패킹 장소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자연의 말없는 위로와 그 웅장함은 생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마음이 지칠수록 자연과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듯하다.     




내 안의 야성     


“ 종종 야성을 잃어가는 시대에 사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 자체를 조롱하거나,

가치를 부정하거나 포기하는 흐름이 읽히기도 한다. 

여기는 사회적 요인도 분명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하나, 우리는 사회적

존재인 동싱 개별적 존재다.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는 내 삶의

실행자인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쪼록 기억해 주시길. 우리의 유전자에 태초의 야성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우리 삶의 소중한 무기라는 것을.”

-정유정 작가 <영원한 천국> 중, 작가의 말에서-   

  

정유정 작가님의 신작이 나오고, 정유정 작가님의 북토크를 다녀왔었다.

작가님께 누군가 물었었다고 한다.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작가님은 그 또한 ‘욕망’에서 시작된 거 같다고 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망’     


욕구가 없고, 욕망이 없던 시절은 분명, 어딘가 구멍이 났던 시기였던 거 같다.

무얼 해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 난 물통처럼.

지금의 나는 나의 욕구와 욕망을 알아차리고, 그것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들과 함께 동행한다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삶의 우선순위에 집중하면서, 내 안의 물을 채워나가는 그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싶은 것들도 많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는 이번주에 선자령에 간다고 한다.

부디, 날씨가 좋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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