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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Aug 09. 2021

다름이 싫었던 아이

똑같은 친구들 사이에서 뛰어나고 싶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7살에 학교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 들어가는 연령을 만 6세로 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1,2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7살에 입학하는 것이 허용되었고, 심지어는 3월에 태어난 아이들도 종종 7살에 입학하는 경우가 있었다. (내 친구 중에는 5월 생인데 7살에 입학을 해서 찐(?) 1살 형, 누나들과 학교를 함께 다녔다. 그 친구는 진짜 생일은 5월이지만 주민등록 상에는 2월로 되어 있었다.) 나 역시 2월 생이어서 7살부터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당시 체격도 작은 데다가 나이도 어려서 교실에서 나보다 작은 아이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당시의 나는 쿨하지 못해서 내가 빠른 생일이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내 생일이 언제인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마치 들켜서는 안되는 비밀을 가진 것처럼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혹시나 내가 한 살 어리다는 것을 알게 된 친구들이 형이라 불러보라며 나를 괴롭히지는 않을까 하는 심각한(?) 걱정을 했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친구들은 8살인데 나만 7살인 것이 싫었다. 


초등학교 1학년 우리 반에는 빠른 생일인 친구들은 7-8명은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12달 중에 1,2월은 1/6이니까 50명이 좀 안됐던 우리 반에서 적어도 7명 이상은 빠른 생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7명의 동지가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조금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나는 소수보다는 언제나 다수에 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기억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돌이켜 보면, 내 학창 시절은 다수이기보다는 언제나 소수 쪽에 있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앞서 말한 것처럼 체격도 작았던 나는 당연히 제일 앞줄에 앉게 되었다. 학기 초에는 제일 친했던 친구랑 앉아서 괜찮았는데, 한 번은 반 인원들 모두의 자리를 바꾼 적이 있었다. 우리 학교의 책상은 두명씩 앉을 수 있었는데 선생님은 왼쪽은 남학생들이, 오른쪽은 여학생들이 앉도록 해서 남녀가 짝이 되게끔 자리를 배정했다. 문제는 우리반이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가 달랐다는 것이었는데, 남학생이 두명 더 많았다. (이것을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남여가 짝이 되어 앉아 있는 다른 책상들과는 달리 내 책상에는 남자아이들 둘이 앉게 되었다. 24개의 책상들 중에 23개는 남여가 앉아 있는데 딱 한자리만 남남이 앉아 있었고, 내가 그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이것만 해도 미칠 것 같았는데, 내 자리는 오른쪽(여자 줄)이었다. 


마음이 몹시 불편한 나와 달리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친구들은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수업을 들었는데, 내 짝은 내가 여자 줄에 앉아 있다고 날 보고 여자라고 말했다. 지금이라면 뭐 그게 어떻다고 그러냐며 넘어갔을텐데 당시는 반박도 못하고 그저 듣고만 있었다. 내가 소심해서이기도 하지만 내 짝은 덩치가 너무 컸다. 그런 큰 덩치를 가진 애가 앞줄에 앉았던 이유는 시력이 나빠서였는데 정상이었다면 우리는 짝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꼬맹이와 덩치였다. 이런 예들은 너무 많았다. 내 가방은 다른 아이들의 가로로 길쭉한 가방과는 달리 세로로 길쭉한 코끼리 가방이었는데, 나는 학교갈 때마다 그 가방을 매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한번은 소풍을 가서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아이들은 네줄로 단체사진을 찍을 때 앞에 두줄은 여자아이들이 앉았고, 뒤에 두줄에 남자애들이 서기로 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내가 앞줄로 밀려서 두번째 줄에 앉아서 사진을 찍게 되었고, 내가 봐도 그 사진은 정말 잘 나왔었다. 그 사진은 원하는 사람들이 신청해서 추가로 인화해서 가질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이 신청했지만 나는 거들떠도 안봤다. 나 혼자서 멍청하게 여학생들 줄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너무 싫었다.




나는 내가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잘 해서 칭찬을 받을 때 친구들이 주목하면 기분이 좋았다. 그것은 똑같은 친구들 사이에서 뛰어나다는 것이니까. 그런데 친구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면 너무 불안하고 그 불안감이 싫었다. 그것이 비록 나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메는 가방의 모양이나 앉는 자리나 사진찍는 위치 같은 것이 친구들과 나를 다르게 만드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 어려운 질문에 혼자서 대답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지만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유치원에서 나 혼자 구구단을 외우고, 유치원 졸업 발표회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긴 연설문을 외워서 대표로 발표를 하기도 했다. 그런 건 좋았는데, 남자친구들 중에서 나 혼자 멜빵 바지를 입는 것 등은 끔찍하게 싫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에 크게 기뻐하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집착했던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자존감이 높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어렸을 때 나를 사랑해준 고마운 사람들은 내가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했을 때 칭찬해주었고, 내가 실수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혼내긴 했지만 그 후에는 용서해주고 격려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실수는 줄이고, 칭찬받을 만한 일을 잘하려는 아이가 되려고 했다. 


지금 내가 과거의 어린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살면서 부모님께 한번도 직접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다. 


"너는 네 존재 자체로 충분히 사랑스러워. 네 모습이 어떻든, 네가 뭘 잘하거나 뭘 잘하지 못하거나 상관없이 너를 사랑해."


지금이라도 내 모습 그대로 나를 받아주고 나를 사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려서부터 들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생각나는대로 나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줘야겠다. 칭찬받기 위해 뭔가를 더 잘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부족해 보이거나 이뤄낸 성과가 별로 없어보이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나는 계속 발전하고 성장할 것이며,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 때문이다. 





Photo by Myles T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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