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사자 Aug 10. 2021

아름다운 형제

가장 오래도록 함께 할 사이

우리 형은 내가 내 마음을 가장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보다도, 다른 친구들보다도 형은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이다. 엄마피셜로 형은 어렸을 때부터 단 한번도 동생이 있다는 것으로 힘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난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어떤 일 때문에 엄마에게 혼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형이 날 보호하겠다고 엄마 앞에서 나를 끌어 안았다고 한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형과 나처럼 남자형제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경우는 많이 못 봤고,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거나 서로 말도 안 섞는 경우는 좀 많이 봤던 것 같다. 우리가 그렇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온순해서인 이유도 있지만 어려서부터 형의 착한 성품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 어렸을 적 일기장을 보면, 형에 대한 칭찬도 있지만 디스하는 내용도 꽤 많긴 하다)


형이랑 내가 얼마나 사이가 좋았냐면, 우리는 서로의 친구들을 공유했다. 이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내 주변에는 이런 형제들이 없었다. 나는 정말 자주 형의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고, 형 친구들의 집에도 항상 놀러갔다. 나는 형과 세트로 함께 다녔다. 심지어 어떤 날은 자다가 깨서 잠옷을 입은 채로 형 친구네 집에 놀러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형도 내 친구들과 함께 놀았다. 내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그 친구의 형이 우리 형과 동갑인데 우리형은 그 형하고는 하나도 안 친하고 내 친구하고만 친했다. 그래서 형이랑 내가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가 서 함께 놀 때, 내 친구의 형은 함께 놀지 않는 신기한 상황도 연출됐다. 그 친구는 지금도 우리 형의 안부를 묻는다. 




체격이 작고 말랐던 나와는 달리 형은 덩치가 컸다. 형은 동네에서 팔씨름과 닭싸움을 제일 잘했다. 나는 소심한 성격과 작은 체격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까지 같은 반 친구들 몇몇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2학년 때가 제일 심했는데, 내 뒤에 앉았던 놈은 내 목 뒷덜미에다가 고무줄이나 샤프심을 이용해서 따갑게 하는 장난을 쳤었다. 또 다른 녀석은 쉬는 시간마다 팔로 내 머리통을 때렸는데, 그 팔에 맞지 않으려면 머리를 숙이고 있어야만 했다(내가 머리를 들면 그 녀석은 다시 나를 때리기를 반복했다). 1년 동안은 그런 식의 괴롭힘을 당해도 그냥 참기만 했었다. 그 해 어느 때인가 내 머리를 때리던 녀석은 다른 친구도 괴롭히기 시작했는데, 괴롭힘을 당했던 친구는 나처럼 가만히 있진 않았다. 괴롭힘을 당하던 녀석이 필사적으로 대들기 시작하는데, 와 그냥 개싸움이었다. 대드는 친구는 우는 건지 소리를 지르는건지 모르지만(울었던 것 같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데, 애들 싸움이라 그런지 거기서 이미 끝난 싸움이었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싸울 때 울면 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때의 싸움은 울었어도 이긴 거였다. 난 그게 충격이었다.


3학년도 그 놈과 같은 반이 되었다. 2학년 때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녀석은 간간이 나를 괴롭혔다. 하루는 조별 수업을 할 때였는데, 6명이 한 조로 모여 있는 상황에서 또 날 때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때는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지난 번 울며 대들었던 친구가 생각난 것 같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주변에서 말려서 더 일이 커지진 않았지만(다행이었다), 무언가가 내 속에서 꿈틀거렸다.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쾌감, 참지 않았다는 행복이 몰려왔다. 그 후로도 내가 괴롭힘을 당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번은 형 친구 중 한 명이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형에게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형이 날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나는 지금도 형이 이해가 안 가는데 누가 날 괴롭히는지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우리 반에서 가장 껄렁해 보이는 친구를 붙잡고 "니가 내 동생 괴롭혔냐?" (걔 아니라고!) 하고 시비를 걸었다. 껄렁한 놈은 눈을 크게 뜨고 "저 아닌데요?" 라고 대답했고, 형은 껄렁이를 놔주며 "아, 그래? (머쓱)" 하고 돌아섰다. 날 괴롭히는 놈이 누군지 끝까지 찾던가 해야 하는데, 내 생각에 형은 그냥 겁만 주려고 왔던 것 같다.(3학년이 갑자기 덩치 큰 5학년에게 붙잡히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괴롭힘의 기억이 그 때가 끝인 걸로 봐서 그 후에는 그냥 잘 지냈던 것 같다. 날 괴롭혔던 애들 중 한 명과는 중학교도 같은 학교로 진학해서 종종 농구도 같이 했는데(그냥 친구가 됐다), 중학생이 되니까 내 키가 걔보다 더 컸다. 또 한 명은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났는데, 날 기억하긴 하는 것 같았다. 확실한 건 내가 더 공부를 잘했으니까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정신승리를 했다. 어쩌면 형의 존재가 나 스스로 대담해지는 과정에서 도움이 된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형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던 때이기도 했으니까. 형은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내가 한결같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형이라고 확신한다. 지금도 가끔 한 달에 한 두번, 형은 아무 용건도 없이 전화를 한다. 난 확실히 복 받은 것 같다.  




Photo by juan pablo rodriguez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다름이 싫었던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