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사자 Aug 25. 2021

크리스마스 카드

가장 기억에 남는 미소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추려고 하는 것 중에 크리스마스 카드가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적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해주곤 했다. 나는 때때로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들에게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는데, 예를 들면 이제 막 다니기 시작한 학원에서 한 두번 인사한 친구의 친구에게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은 친구들의 반응은 대부분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반응이었는데, 나는 그들이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아 들고 미소짓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했다.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감을 느끼다니 나는 좀 특이했던 것 같다. 안 친한 친구에게 카드를 건네 줄 때 혹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가졌던 생각은 좀 더 가벼운 마음이었던 것 같다. 카드의 내용도 아주 평범했기 때문에 (메리 크리스마스 and 해피 뉴이어 정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행운의 편지(긍정적인 내용이다)를 보내는 것 같은 기분으로 보내자고 생각한 듯 하다. 내게서 의외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은 친구들 중에는 답장을 보내주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어떤 친구들은 그 후로도 몇 해에 걸쳐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곤 했다. 심지어는 내가 군대에 가 있는 기간에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 


6학년 때 반 친구 중 하나는 내게 의외의 카드를 받고 다음날 바로 카드를 만들어서 보냈는데, 카드를 살 돈이 없었는지 노란 형광 도화지를 핑킹가위로 잘라서 겉지를 만들고 색종이를 대충 붙여서 내지로 사용하고 검정 플러스펜(잉크가 잘 번진다)으로 삐뚤삐뚤 글씨를 써서 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내게 카드를 줘서 고마워. 내가 직접 카드를 만들어서 별볼일 없지만 정성이 '듬뿍' 담겨있으니 받아주길 바래. 메리 크리스마스 -이**' 


한번은 진짜 좋아하던 여자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낸 적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때의 가슴 떨리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카드를 전해주기 위한 적절한 기회를 찾고 있었고, 마침내 그 기회를 찾아 전해줄 수 있었다. 우리는 오래 알던 친구였는데, 나는 나 스스로 이 아이 앞에서 매번 바보 같은 행동만 하는 것 같아서 얼마나 나를 자책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알았지만 그렇게 친해지지 못했다. 나는 이 아이를 좋아했지만 그것이 다 티가 나게 행동하면서도 겉으로는 부정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 때는 어떤 용기가 났는지 크리스마스 카드 치고는 꽤 긴 내용의 편지를 썼고, 그 내용은 좋아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소극적인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내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해주기 위해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던 순간과 그 아이가 뒤를 돌아봤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면서 별다른 말은 안했지만 그 아이는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보고 웃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미소였다. 그 날밤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한 노래를 지어 밤새도록 이불 속에서 불렀던 기억이 난다(왜 그랬을까). 악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가사와 멜로디는 생각이 나는데 그 내용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그 후로 오랜 시간을 그 아이를 좋아했고, 우리는 전보다 조금 더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 아이도 나를 좋아해주길 바랐지만 나는 더이상 어떤 용기도 내지 못했다. 이 아이가 내가 군대에 있을 때 크리스마스에 편지도 보내주고, 사진 보내주고 그랬던 친구다. 




아쉽게도 지금은 연락이 안된다. 대학을 졸업할 때 쯤 그녀는 이사를 갔고,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Photo by JC Gellidon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운 형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