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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Dec 28. 2022

듣고 싶었던 말

고생을 바라는 마음은 아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을 만들어내는 신비한 장소다. 2003년 군에 입대할 당시에는 군대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가 좋아서가 아니고 그 젊음이 너무 고귀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학부 전공을 1학년을 마치고 나서 결정하였는데, 군입대하기 전에 전공을 조금 공부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2학년까지 마치고 입대를 했다. 그 다음 해 신입생들이 입학하고 내 동기들은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휴학생임에도 학과 엠티에 따라갔고, 그곳에서 많은 선배, 동기, 후배, 교수님들로부터 군대 잘 다녀오라는 격려를 받았다. 근데 그 격려라고 해준 말이 의미만 생각해보면, 좋은 건 아니었다. 


가서 고생해라


응? 군대 가서 고생하라고?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4월에 입대했는데, 아직도 그 날짜가 생각난다. 4월 2일이었다. 그 전날 지인 및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을 때, 오랜만에 내 연락을 받은 친구들은 만우절 장난이냐고 묻기도 했다. 나도 만우절 장난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군대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은 군대가 아니었다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인연들이었다. 나는 군대를 조금 늦게 간 편이었기에 동기들 중에서는 동생들도 많았다. 선임들 중에 사회에서라면 친구인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상하게 군대밥을 먹으면 금방 얼굴이 노련해지는 것 같다. 그들은 나이가 같아도 친구로 안 보이고, 후임들 중에는 나이가 많아도 형으로 안보인다. 오로지 군대밥을 먹는 순간부터 나이를 새로 셈하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같은 선임 중 하나는 유독 나와 사이가 안 좋았다. 그와 대화할 때는 좋은 말을 기대하기 어려운 그런 사람이었다. 나보다 10개월 빠른 그 선임과는 함께 군생활을 했던 기간동안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 그런 그가 나에게 딱 한번 좋은 말을 해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욕봤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던 때에 그가 단 한번 내게 해준 좋은 말이었다. 

경상도 사람이었던 그 다운 짧고 강렬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를 조금은 다르게 보게 했던 말이기도 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에게 격려의 의미를 담아 '고생해라, 수고해라, 욕봐라'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이 고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 아닌 것은 잘 안다. 그 안에 담긴 말의 온도는 힘들테지만 잘 견디고,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따뜻함일 것이다. 그리고 그 힘듦을 이해하는 그 말 한마디가 나는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고병장, 잘 지내고 있나?'






Photo by jesse orric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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