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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Apr 26. 2024

지우고 싶은 날

쿨하지 못했어

  어릴 적 기억 중에 사소하지만 조금 후회되는 일이 있다. 나는 내가 좀 손해보는 일에 대해 좀 더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성향은 나이가 들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뭔가 찝찝함이 남아서 마음 속이 불편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와 매우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 내 기억에 우리가 같은반이 된 것은 그 때가 유일했다. 학기초에는 담임 선생님께서 정해준 자리에 앉았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자리를 바꿀 때가 되었고 자유롭게 바꿔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가장 친한 친구와 같은 책상에 앉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교실은 2인용 책상에 두명씩 함께 앉아야 했다. 그래서 모두가 새로운 자리를 찾아서 이동할 때 우리도 알맞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 후 나는 자연스럽게 원래 자리에서 내짐을 들고 새로운 자리로 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다른 아이가 앉아있는 게 아닌가.


"야, 내 자리야"

"뭐? 아닌데, 내 자린데?"

......


  새로운 자리로 이동할 때, 대부분은 자기 짐을 최소한 하나씩은 가지고 간다. 육식동물들이 자기 영역표시를 하듯 자신의 물건으로 거기가 자기 자리임을 확정하는 것이다. 내 자리였던 곳에 앉은 애는 내가 앉았다가 일어났기 때문에 빈자리가 됐고, 그래서 거기에 자기가 앉았다고 그러며 자리를 양보할 뜻이 없어보였다. 그 사이 남은 한 자리는 맨 앞자리였는데, 내 자리를 가로챈 애도 그 자리로는 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짝꿍이 될 뻔했던 친구는 왜 그 때 좀 더 나서주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함께 앉고 싶었던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걸까.. 심지어 바로 뒷자리에서 우리가 먼저 앉아있던 걸 봤던 친구들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많이 억울했고 쿨하지도 못한 표정으로 남아 있는 맨 앞자리로 갔다.


  그 때를 돌아보며 지금 생각해 볼 때 내가 좀 더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면서 주변 친구들을 좀더 끌어들였어야 했었다. 내가 분명 그 자리를 맡았었고, 내가 짐을 가지러 가는 사이에 자리를 빼앗긴 거라고 이야기했다면, 아마도 그 자리를 되찾아 왔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쿨하지 못한 표정도 들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솔직하게는 그런 표정을 지어보였다는 것이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차라리 앞자리로 가면서 "그래, 그 자리 너가 앉아라. 내가 맨앞으로 간다" 라고 했다면 더 쿨내나고 멋있었을텐데 라는 후회가 든다.


  근데 이런 성격은 지금도 딱히 변하지 않았다. 자리와 관련된 일은 커서도 있었다. 야구장에서 있었던 일인데, 2000년대 후반에야 보편화된 지정좌석제가 생기기 전 나는 동네 동생들과 함께 야구를 보러 갔었다. 우리는 4명이었는데 입장 티켓에는 좌석 번호가 적혀 있었지만 사람들은 편의상 빈자리에 일행들끼리 와서 관람을 했다. 그래서 따로따로 예매를 해서 좌석이 떨어져 있어도 연결된 남의 자리에 앉아서 정작 실제 좌석 주인에게 비켜주지 않았다. 그날이 마침 그런 상황이었다. 우리는 예상보다 늦게 도착하여 경기가 이미 시작된 후에 입장하게 되었고 우리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응원중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이미 경기가 시작된 터라 그 자리가 빈자리인 줄 알았던것 같다. 그러면서 죄송하다고 일행이 있어서 그러는데 저기 빈자리에 앉으시면 안되겠냐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힐끗 보니 우리 4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비어 있었고 우리가 그 빈자리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다른 주인이 있는 자리였고, 그들은 우리보다 조금 늦게 왔을 뿐이었다.


"저기, 거기 우리 자린데요?"

"아, 저희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리에 있어서 여기 빈자리로 온거에요"

"그래도 비켜주세요"

......


  우리는 다른 빈자리를 찾아 이동했고, 다행히 다시 쫒겨나는 일은 없었다. 함께 온 한 동생은 우리도 원래 우리 자리로 가서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냥 여기 빈자리 같으니까 그냥 앉자고 말했다. 또 쿨하지 못한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왜 더 단호하게 우리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까. 그리고 우리 자리를 찾아오자고 했던 동생의 말을 듣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날 우리 팀이 경기에서 이기지 못한 것보다 우리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패배감이 더 크게 남은 날이었다.






  내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누리지 못할 거라면 쿨하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조금은 씁쓸한 미소 띤 표정으로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Photo by Petri Haanpaa i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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