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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Apr 06. 2024

한 번은 짜릿한 순간이 온다.

준비된 마지막 선수

  야구 경기에서 9번 타자는 팀에서 아홉번째로 타석에 서는 선수일 뿐 다른 선수들에 비해 약하거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선수들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초등학생일 때의 나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남자 아이들은 말을 많이 하면서 친해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대신에 운동을 함께 하면서 친해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반에서는 운동을 좋아하고 잘 하는 아이가 인기가 많았다. 전학을 온 친구들은 체육시간에 함께 공을 차고 나서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한 반에 약 25명 정도의 남자 아이들이 있었지만 다른 반과 주말에 축구 시합을 하려면 선수가 늘 부족했다. 주말에 11명을 운동장에 나오도록 하는 것은 대체로 힘들었다. 나는 주로 숫자가 부족해서 마지막에 충원되는 선수였다. 처음부터 찾게 되는 사람이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마지막에 선택을 받으며 경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었다. 그래서 포지션도 수비수 또는 골키퍼였다. 사실상 골키퍼는 너무 중요했기에 대부분 중앙 수비수였다. 공 좀 한다는 애들은 다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야구시합도 했는데, 11명을 모으는 축구보다 9명 모으는 야구가 더 힘들었다. 겨우 인원을 모아서 시합을 했지만 글러브도 없이 맨손으로 공을 잡고 야구 배트 하나로 돌아 가면서 공을 쳤고, 야구공이 아닌 테니스공으로 경기를 했다. 야구에서도 나는 우리 팀의 준비된 마지막 선수였다.


  일반 초등학생들의 야구는 진지했지만 엉성했다. 심판도 없이 경기를 했기 때문에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모두 말 다툼이 되었다. 목소리 큰 놈들이 소리 지르며 우기는 모습은 참 가관이다. 그렇게 한참을 우기다 나오는 결론은 다시 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안타를 치고 나가도 파울이라고 상대가 우겨서 다시 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들의 야구에서 독특한 규정이 있었는데 도루는 할 수 없었고, 안타를 쳐도 두 베이 스 넘게 갈 수 없었으며, 안타된 공을 상대 수비가 잡으면 더 이상 뛸 수 없었다. 2루타를 치기 위해서는 안타가 된 공을 수비가 잡기 전에 2루까지 가야만 했다. 그리고 1루수의 실력이 가장 중요했는데, 평범한 땅볼 송구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서 수비수들은 공을 던지기보다 공을 잡고 1루로 뛰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항상 9번 타자였다. 팀에서는 나에게 안타를 기대하지 않았다. 상대팀도 날 위협적이지 않게 여겼다. 내 타석에서 모든 수비수들이 전진하였다. 결정적인 순간이 9번타자에게 찾아왔다. 상대 투수는 힘이 떨어져 있었고, 외야 수비는 너무 앞에 나와 있었는데, 나는 내 어깨 높이만큼 오는 공을 때려 운동장 가장 먼곳으로 보냈다. 나는 여유롭게 2루까지 갔고, 우리팀은 두점을 얻었는데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었다. 상대팀도 놀라고 우리 팀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9번 타자도 종종 터질 때가 있다. 비록 가장 적은 횟수로 타석에 서게 될 확률이 높지만, 한 번 터지면 우리팀의 분위기는 수직상승하고 상대팀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는 가장 먼저 대체될 선수였지만 가장 필요한 선수였다. 훌륭하지 않은 운동능력으로 가끔 훌륭한 결과를 내었던 것은 아직도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photo by Kenny Eliaso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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