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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판양 Sep 09. 2024

오늘은 며칠일까? 오늘은 매일이지

사랑하는 사람아, 오늘은 일생이야.

오늘은 며칠일까? 오늘은 매일이지

중학교 시절,

학교 근처에 만화방들이 하나둘 생기며 가격 경쟁이 치열해졌다.

3권에 1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나는 그때 황미나와 이현세의 만화에 푹 빠져 있었고,

만화방은 나만의 작은 천국이었다.


우리 학교는 담임선생님의 재량으로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반이 있었는데,

내 옆반이 바로 그랬다.

체육선생님이 담임이셨던 그 반은

저녁까지 남아 공부를 했고, 우리 반은 야자 없이 정규수업 후 바로 하교를했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만화방에 들러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느 날, 만화방에서 만화를 읽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친구가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OO야!" 하고 큰 소리로 불렀는데,

그 순간 그 친구 뒤에서 체육선생님이 나타나셨다.

선생님은 늦은 시간까지 남아 공부한 제자들이 걱정돼,

학교 앞 버스정거장까지 함께 걸어가고 계셨던 거였다.

 

그런 걸 전혀 모르고 나는 친구를 불렀으니…

선생님은 나를 보며

"내일 교무실로 오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가셨다.

그때의 나는 내일이 오는 게 정말 너무나도 두려웠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 속에서 진짜로 오래 남은 건,

바로 만화방에서 읽은 이현세의 만화 속 한 구절이었다.

그 구절은 어린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남아 있다.


그날의 두려움과 만화 속에서 발견한 감동이

나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모든 순간들이 모여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오늘은 며칠일까?


오늘은 며칠일까? 오늘은 매일이지.

귀여운 사람아, 오늘은 일생이야


- 이현세 '카론의 새벽' 중에서 -


이현세 - 카론의 새벽-


이 문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린마음에도 심장이 철렁하는 것 같았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기만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글을 읽고 나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수많은 하루하루가 모여

내 한 달이, 일 년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단순히 반복되는 날들 중 하나가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담고 있는

 귀한 순간이라는 걸

느낀 건 그걸 읽고서도 한참

세월이 지난 후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모든 순간들이 모여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의 두려움마저도

지금의 나를 만드는 한 조각이었음을

이제는 감사하게 여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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