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단속 앞에서 꺼낸 건 면허증 대신 신용카드였다.

by 캡틴판양

역시, 고된 하루를 끝내고 마시는 맥주는 내게 가장 든든한 위로였다.

어디에도 비할 바 없는 이 순간. 특히 새벽일을 끝내고 왕계란말이를 안주 삼아 시원한 생맥주를 한 모금 넘기니, 맥주가 술술 들어갔다.

한 잔, 두 잔... 지친 하루를 위로하며 작은 축제를 즐기고 있던 그때, 현미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지금요? 아~ D2 30세트요?"

현미는 핸드폰을 잠시 막고 나를 향해 물었다.

"언니, D2 30 세트면 110만 원인데 어떻게 하지? 지금 매장에 고객이 와 계신다는데?

게다가 북창동까지 배송도 해줘야 한대."

매장 앞 5분 거리에서 맥주 한잔 마시던 우리에게 110만 원이라니!

"된다고 해! 당연히 해줘야지."

한참 세트철이라 110만 원 매출은 꽤 큰 금액이었다. 다행히 현미는 술을 못 마시기에 고객 응대는 문제없었다. 문제는 차를 가진 나였는데, 이미 맥주를 두 잔이나 마신 상태였지만 수다로 보낸 시간이 있다 보니 그래도... 한 번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잠원동 K클럽은 24시간 운영되는 곳이라 새벽에도 고객들의 발길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누가, 얼마나 구매할지 모르기에 직원을 밤새 근무시키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 2시 30분, 고된 하루를 달래던 소중한 시간을 뒤로하고 고객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그 와중에 윤정이는 콜라가 아깝다며 원샷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장에서 고객응대를 마치고 판매까지 성공한 현미가 후방 창고를 지나 선물세트 D2 30개를 카트에 싣고 와 내 차에 옮겼다. 그렇게 우리는 30세트를 싣고 북창동으로 출발했다.


새벽 3시, 북창동으로 가려면 하얏트 호텔 길을 지나야 했는데 갑자기 앞차들의 후미등이 일제히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등골이 오싹했다.

설마...?

주차 단속도 아니고, 음주 단속이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혹시 차 안에 내 입안을 혼란스럽게 만들 만한 게 없을까? 다급하게 주변을 뒤지다 이브껌을 발견하고 얼른 씹었다. 하지만 떨리는 내 심장 속 소리까지 감출 순 없었다.

드디어 내 차례.

"안녕하세요. 음주단속 중입니다. 후~ 하고 불어주세요."

"후............"

"좀 더 세게 후~ 하고 불어주세요."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다시 "후~~~" 하고 불었다. 그런데 경찰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옆에 있던 노련한 경찰관이 다가와 젊은 경찰관에게 물었다.

"왜? 뭐가 문제야?"

"수치가 좀 애매해서요."

노련한 경찰관이 장비를 확인하고 나를 보더니 말했다.

"갓길에 차 세우고 내려보세요."

차에서 내리는데, 하필 높은 굽을 신은 터라 중심을 살짝 잃고 휘청했다.

"많이 취하셨어요?"

"아니에요! 길이 고르지 않아서 그래요!"

"면허증 좀 주세요."

나는 가방에서 장지갑을 꺼내 면허증을 내밀었다. 그런데 경찰관이 면허증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음주하고 면허증 밑에 현금을 내미는 사람은 봤어도, 이렇게 대놓고 카드를 주는 사람은 처음 보네.

이걸로 뭘 하라는 거예요?"

노련한 경찰관은 허허 웃었다.

뭐지? 당황하며 보니... 면허증이 아니라 국민카드를 꺼내 건넸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갑에는 신용카드, 면허증, 피트니스 카드 등 온갖 카드가 들어 있었는데, 하필 면허증 위에 있던 국민카드를 꺼내 건넨 것이다.

경찰관은 다시 한번 "후~" 하고 불어보라고 했다.

이번에는 나도 체념한 듯 깊이 심호흡을 하고 "후~~~" 하고 불었다.

음주 측정기에 빨간 숫자가 오르기 시작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미친 듯이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결과는 0.02%.

경찰관은 "훈방 조치입니다."라며 주의를 주었다.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대리운전 부르거나 대중교통 이용하셔야 합니다. 오늘은 운이 좋아 훈방이지만

컨디션에 따라 한 모금만 마셔도 수치가 올라갈 수 있어요."

나는 이 상황이 너무 감사해서 몇 번이고 경찰관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날 이후, 나는 절대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다.

새벽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차에 올랐다. 도로 위의 불빛들이 희미하게 번지는 걸 보며 생각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오래전 광고 카피처럼,

한순간의 선택이 내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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