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다시 낭자엄마의 거칠지만 단단한 사랑
마지막에 웃는 게 아니라, 자주 웃는 게 인생이더라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2학년이 되면 "생활관 실습"이라는 전통처럼 이어져 온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학급별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예절 교육이 아니었다. 우리는 생활예절(학교생활예절, 인사법, 전화예절, 올바른 언어사용 및 의사표현)뿐만 아니라, 전통예절로 복식예절(한복 착용법), 기거동작 예절, 절하기 및 상 차리기 등을 배웠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예절도 익혔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학부모들이 함께 참여하는 예절 교육이 진행되었는데, 그 시간이야말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닫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며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나는 문득 그때로 시계를 돌려본다.
그날 우리 반 학부모들 중에서 가장 젊고 화려하게 화장하고 온 분은 정혜 엄마였다.
정혜엄마는 누구보다 빛나는 미모를 맘껏 뽐내고 있었다.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딸들의 학교 행사라고, 미용실에서 곱게 머리를 손질하고, 경쟁하듯 화려한 한복을 차려입고 오셨다.
학부모들은 우리가 갈고닦은 전통음악 실력을 감상하고, 한복을 차려입은 딸들에게 절을 받으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통음악 시범학교로 1인 1 악기를 음악시간에 배웠다)
그 모든 화려함 속에 조용히, 하지만 강렬하게 나의 엄마가 있었다.
다른 엄마들과 달리, 엄마는 일하는 도중에 허겁지겁 학교로 오셨다.
화장은커녕, 머리도 대충 한복도 서둘러 입은 티가 났다. 손에는 아직도 일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이 먹먹했다. 딸이 기죽지 않도록 바쁜 와중에도 학교로 와준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딸들이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출석부 순서대로 거의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은 언제나 조용필이 나와서 마무리하듯, 스타는 역시 마지막에 나오나 봅니다.”
장난스럽게 운을 띄우려 했지만, 나는 울 엄마를 보는 순간 목이 메었다.
“오늘도 5남매를 위해 애쓰고 오신 우리 엄마......”
그 말을 내뱉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평소 학교에서는 누구보다 활달하고 기세 좋던 내가,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다른 엄마들처럼 미용실에서 머리손질하고 예쁘게 화장하고 고운 한복을 입고 왔지만 울 엄마는 일을 마치지도 못하고 중간에 허겁지겁 달려오셨다. 그래도 그중에서 내 눈에는 우리 엄마가 가장 빛나 보였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제가 크면 우리 엄마에 대해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꼭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때 나는 나름 문학소녀였다. 국어 선생님을 좋아해서 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적어도 국어성적은 좋았던 터라 선생님께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던 책의 제목은 바로 ‘도끼다시 낭자엄마’였다.
(도끼다시는 콘크리트 바닥을 다지고 연마하여 자연스러운 질감을 만드는 방식)
왜 도끼다시 낭자엄마였을까?
궁금하다면 이 글이 그 첫걸음으로 한번 열심히 써보기로 할까?
엄마는 늘 삶을 아끼듯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알겠다. 웃음은 미루는 게 아니란 걸.
“주름? 아냐. 돈? 그거 좋지. 근데 그것도 아냐. 할미가 젤루 억울한 건 나는 언제 한번 놀아보나 그것만 보고 살았는데, 지랄. 이제 좀 놀아볼라치니 다 늙어버렸다. 야야, 나는 마지막에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인 줄 알았다. 근데 자주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이었어. 그러니까 인생 너무 아끼고 살진 말어. 꽃놀이도 꼬박꼬박 다니고. 이제 보니 웃음이란 것은 미루면 돈처럼 쌓이는 게 아니라 더 사라지더라.”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