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리더는 위엄 있고 근엄해야 한다고 믿었다.
때로는 직원들이 무서워해야
조직이 바로 선다고 생각했다.
본부장 시절,
같은 실수가 반복되거나
근태 문제가 이어질 땐
망설임 없이 무섭게 혼을 냈다.
특히 지각은 더 용납하기 어려웠다.
3분, 5분, 10분…
사소해 보이는 그 반복이
‘오늘 하루 준비조차 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5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팀장을 대신해
다른 팀장에게 연락을 시켰더니
이제야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은 연차 쓰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
그렇게 나는
‘무서울 땐 무서운 상사’가
좋은 리더라고 믿었다.
몇 년 뒤, 실장이 된 내게
6년을 함께한 직원이 퇴사하며
손 편지 한 통을 남겼다.
편지의 첫 문장은 이랬다.
“실장님.
우리는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상사의 표정을 살펴요.
웃음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놓이고,
얼굴이 굳어 있으면
하루 종일 긴장 속에서 지내야 하죠.”
“팀장님들이 혼나는 날이면
저희는 잘못이 없어도
숨죽이며 일하게 돼요.
그래서 실장님은 단순한 상사가 아니라
우리 하루의 공기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편지를 읽는 순간,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틀렸다는 게 아팠던 게 아니었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그 시간들이,
누군가에겐 숨죽여야 하는 하루였다는 사실이 아팠다.
나는 내 나름대로 원칙을 세운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매일 아침 내 표정을 읽으며
오늘 하루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어느 조직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임원들이 모두 외근을 나간 날이면 직원들은 농담처럼 말한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네."
"그러나 이제, 그 한마디가 웃기지 않다"
ART — 위엄보다 중요한 것
무섭게 군다고 팀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리더의 역할이 거창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적어도 오늘 아침,
직원들이 출근해서 내 표정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공기를 만들어주는 것.
직원들은 제도나 복지보다 먼저,
오늘 하루의 공기를 느낀다.
그 공기를 만드는 사람이 리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