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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Sep 09. 2020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

-취업 준비라는 여정과 그 무료함에 관하여.

나에게 있어서 취준이란 무료함이었다.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고 그 결과‘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매번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익숙해질 즈음, 취준이란 익숙함을 넘어 무료함으로 자리했다. 이 같은 일상은 취업 준비 전의 오롯이 누리던 자유를 잊게끔 했고 문득 이런 생각에 서글퍼져 다른 일상을 통한 자유를 되새기며 그려보니, 나의 머릿속 한 구석에는 여행이 자리했다. 


 무료함을 느낄 수 있는 일상에서 '자유'를 느끼고자 낯선 장소로 향한다. 그 장소가 어딘가는 중요하지 않다 낯선 일상을 위한 낯선 장소인지가 중요할 뿐이다. ‘가보지 않은 곳에 왔다는 즐거움보다 다시 올 수 있을까’란 생각이 남기는 아쉬움과 여운이 내게 유독 크게 느껴진 졌던 것은 아마도 취업 후에는 이러한 자유로움과 여행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낯선 여행지는 곧 슬픈 곳이 돼 버렸다. 

이러한 여정의 결과는 낯선 장소를 통한 나의 자유였지만 그 여정 자체와 과정으로써는 아쉬움, 두려움 그리고 슬픔이 함께 자리함을 여행의 끝에서 느끼는 자유를 통해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취업 준비라는 여정은 나에게만큼은 가장 고독한 순간이었지만, 취업을 이미 한 사람들에게 있어선 가장 자유로운 순간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종 합격이라는 여정의 끝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었고, 취준이란 여정이 초행길이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 있었음을 2018년 여름의 끝에 선 채로 낯선 장소의 끝에서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낯선 여행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 또한 커피잔이 비워졌음을 확인했기 때문이 아닐까?. 끝없이 펼쳐진 여수 바다의 수평선을 빈 잔을 들고 바라보며,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에 잠겨본다.


 낯선 장소로의 여행을 마친 후,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무료함은 당연 하다듯 찾아왔다. 하지만 무료함은 고독도 될 수 있고, 자유가 될 수 있음을 받아들였기에 수평선 너머를 향하여 한발 한발 내딛을 수 있었다. 초행길이기에 길을 돌아갈 수도, 헤멜 수도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이런 생각에도 무료함이 가시지 않을 때는, 또다시 낯선 장소로 여행을 떠났다. 여수, 전주 그리고 경주를 끝으로 나는 취준이란 여정을 완주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고독이었던 나의 자유와 정제되지 않은 나의 솔직한 감정들이다. 타인의 따듯한 위로와 격려가 익숙해지고 무료해질수록, 본디 가졌던 자유를 잃어가는 것에 조차 익숙해지곤 한다. 하지만 취준은 나의 여정임을 되새긴다면, 무료함 속에서 필요한 것은 낯선 장소에서 느끼는 나의 낯설고 솔직한 감정일지도 모를 일이다. 3년이 지난 지금 그토록 그리워하는 그때의 나의 감정들 말이다. 


 인생에서 순간순간 마주해야만 하는 갈림길 앞에 섰었다. 가야 하는 길을 두고,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해본다. 다시는 못 가볼지 모르는 길이기에. 내가 슬펐던 것은 고독해서가 아니라 가지 못할 길이 눈에 밟혀서였 나보다. 취준이라는 여정 속에는 슬픔, 좌절 그리고 시련이 함께 찾아와 가장 고독한 순간이자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통이 이어져 익숙해지고, 익숙함이 이어져 무료함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어두컴컴한 산속을 조명등 하나를 든 채로 걸어가는 누군가를 상상해본다. 역설적이지만 가장 나 다운 순간이자 솔직한 순간일 것이고, 가장 낯선 순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취준이 무료해질 즈음에는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으로 떠나보자. 나의 길을 걷고, 나의 여정을 완주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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