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의 이직 그리고 2번의 이사가 남긴 것들
오랜만에 글을 다시 써봅니다. 인생에서 기억될 만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직이 있었는데, 이직에 대한 주제로 글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계기는 이직이었지만, 바뀌는 건 제 삶인 것 처럼요. 제 글도 아마 그런 성격을 담는 탓에 조금은 긴 호흡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악한 글을 먼저 읽어주심에 감사드리며.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고들 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인생을 그래프로 표현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인생을 설명하고 표현할 때 그래프 만한 게 없다는 듯 그래프로 표현한다. 그래프가 가지는 단순함 속에 얼마나 개개인의 구구절절함이 깃들여지는지에 대해선 나는 알 길이 없다. 정량적 평가 요소들이 아니면 인생을 계량화 했다는 그래프에는 담길 리가 만무하다. 빛을 보지 못하는 구구절절함이 그 그래프에 담기지 못할수록 개인의 애환이자 한이 된다. 그래서인지 그래프가 썩 달갑지는 않다. 한이 많은 걸까?.
"무슨 일 하세요?" 만큼이나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말이 없다. 그 한마디로 한 개인의 삶이 아주 쉬이 계량화 되는걸 더욱 많이 경험해서다. 급한 성격 때문인 지 사람들은 긴 설명에는 긴 집중력을 가져주지 않는다. 단순한 대답을 원한다. 질문은 '무슨 일을 하는지'이지만, 그 껍데기를 한 꺼풀 까 보면 '어느 조직'에 속해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대다수다. 명함을 많이 주고받지만, 그만큼 공허한 게 없다. 무슨 일을 하는지 보다는, 이 사람이 어느 조직에 속해 있는지로 단박에 관심의 한도가 정해진다. 그 관심의 한도가 높을수록 질문은 비례하여 많아진다.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무섭다. 타인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할수록 틀리길 바라는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인다. 그래서인지 설명을 많이 '구해야만' 하는 조직에 몸 담는 것은 서로에게 피곤한 일이다. 관심의 한도는 그래서인지 사회초년생에게 자존감 또는 자신감의 기능까지 겸하는지도 모르겠다. 한도, 자존감 또는 자신감, 단순함은 교묘하게 그래프상 비례하게끔 비추어지니까. 사람들은 그래서인지 '그래프'를 선호하는 걸까? 단순하니까.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란 말을 믿는 편이다. 인생에서의 우회가 많을수록, 방향이란 말을 더 믿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자기 방어기제로서가 아니라 정말 있는 말 그대로, 인생이 정답이 없다고 느낄수록 방향은 많아질 테니까. 그렇기에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타인에 의한 방향도 안된다, 오로지 나를 위한 방향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복잡다단한 애환이 얽히고설킬수록 나를 위한 방향이어야만 하는데, 그 방향이 나와 남 사이 또는 나와 가족 사이에서 어중간한 합의를 한다. 인생이 본디 날 때부터 나로 인해 나는 게 아니어서 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 인생은 정말로 쉽지 않다.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방향을 더더욱 나로 가져가야 함은 내가 남길 후회를 덜 하는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홀몸일 때 몸이 가볍다 그리고 마음도 아직은 가볍다. 나의 선택을 여전히 할 수 있다는 위안을 통해서.
나의 첫 직무는 해외영업이었다. 이미 학생일 때부터, 마음속 깊이 자리해왔다. 어느 조직에 들어가면 좋을 거 같다는 희망과 선호는 있었지만, 해외영업이 아니라면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직장인으로서의 나의 방향은 해외영업이어야만 했기에. 단순하지 않은가?. 수많은 구구절절한 이야기들도 얽히고설켜 이런 결정을 내리게 했겠지만, 직무의 선택과 결정은 명확했다. 그게 나의 방향이었다. 나의 선택이니, 내가 결정 지어야만 하니까. 타인이 개입하는 게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결정은 단순화했다. 마치 그래프처럼.
속도는 결국 0이 된다. 그래서 방향이다.
2018년 수많은 면접 속에서 해외영업으로 커리어의 시작점을 찍고 그어가기 시작했다. 0~100의 범위를 가지는 그래프 속에서, 정말 객관적으로 최소한 70대의 그래프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무슨 일 하세요?"에 대한 질문의 요를 당시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판단에는 모든 것이 고려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판단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몸 담은 곳이 유명한지 아닌지로만 내 그래프가 결정된다는 것에 안타까웠다. 그것도 주변 동창과 친구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에는 분통도 터졌었다. 아마도 그럴 테다. 수많은 사람들이 누구나가 아는 조직을 희망하는 것은 이런 연유가 있을 테다. 하지만 나의 선택이 아니었던가? 해외영업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것이 나의 방향이지 않은가.
2018년의 겨울은 유달리 추웠다. 생소하고 낯선 환경에서 '일'을 한다는 것보다 더 추웠던 것은 왜 내가 이 그래프로 인식되는가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던 거 같다. 아마도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향으로 이가 배가돼,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답이 없는 고민 속에서 스스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영업은 내게 소소한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느낀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해외영업이었기에, 나의 방향이었기에 내가 술잔을 나누며 위태로운 불안함 속에서 그리고 불인정 속에서도 뚜벅뚜벅 걸어올 수 있었다는 것을.
2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