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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Aug 15. 2022

이직이 가져다주는 생각들 - 2

2번의 이직 그리고 2번의 이사가 남긴 것들


 위태로운 불안함 속에서 그리고 불인정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걷는 것 그뿐이었다. 연고가 없는 곳에서 '일'을 시작한 다는 것이 이런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일' 때문에 괴롭고 힘든 게 아니라, 일이 아닌 것들 때문에 힘들다고 느끼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인정, 불안정 그리고 일상에 대한 불만족.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많다고 느끼는 일상이 스스로에겐 상처였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가 예민하게 이미 느끼고 있었다. 회사의 문제라기보다는, 서울이 문제라고 느꼈다. 바다의 감수성을 타고난 나에게 일로서는 맞지 않는 곳이라고, 강남 한복판은 나랑은 맞지 않는 곳이라고며 말이다. 첫 출근일에 삼성역에 내려 영동대로를 따라 걸으며 출근했던 것이 생각난다. 시간이 고작 1년이 흘렀을 뿐인데, 1년 전 후로 나는 많이 변해있었다. 아마 이때 즘이었던 거 같다. 일상이 너무도 '재미'가 없다고 느낀 시기도.


이상하게 대로를 따라 걷는걸 좋아한다. 영동대로가 아직도 낯설지 않다.


 첫 직장의 면접일을 기억한다. 캐리어를 끌고 1층 수위실 앞에서 우물쭈물하던 청년에게 캐리어를 여기 두고 면접 잘 보고 오시라고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네시던 수위 아저씨의 모습. 아마도 괜찮은 회사일지 모를 거란 생각을 했었다. 해외영업팀원들의 행선지가 적힌 보드판 그리고 오후 4시를 넘긴 석양이 한눈에 들어오는 사무실의 분위기는 묘하게도 포근함을 느끼게 했다. 내 일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면접 대기실에서 궁금한 거 있으면 자기한테 편하게 다 물어보라던 애띤 얼굴의 대리가 사수가 된 것도, 면접에서 생기발랄하게 특유의 나의 장기를 좋게 봐주신 면접관 분들이 계신 것도 이 모든 기억들이 조각처럼 딱 맞아떨어져 나의 '첫 직장'으로 완성된 것도 나에겐 아직도 신기할 따름이다. '일'을 하러 왔음에도, 동료를 세심하게 챙겨주는 애정과 온정이 있는 곳이 었기에. 


 그래프를 선호하는 타인은 이런 나의 구구절절함을 알 길이 없기에, 더 분통이 터졌고 회사가 아닌 나의 일상에 더욱 짜증과 갑갑함을 느낀 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10살이나 한참 더 어린 동생의 이런 하소연도 허허하며 웃으며 들어주던 선배이자 형님들은 4년이 지난 지금도 허허 웃으며 들어준다는 것에서, 무척이나 따스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나에겐 4년이 흐른 아직도 따스하기만 한 회사이다. 


 따스한 사람과 회사에 마음이 커질수록, 일상에 대한 나의 무기력감과 불만족은 커져갔다. 30살을 앞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은 더 커져갔다.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힘들지만 남을 것이냐. 나와 같은 연유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당연히 했을법할 고민이다. 30살을 넘기면 찾아올 고민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하다. 행복의 역설인지, 행복의 아이러니인지 나는 일에는 재미를 느꼈지만, 일을 제외한 일상에서는 재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직장인에게 주말은 행복해야 하는데, 나의 주말은 무미건조하기만 했다. 평일과 전혀 다를 바 없이.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것들을 소중히 간직하기로 결심했다. 2년이 채 안돼서 나는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따스하고 울고 웃었던 좋은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일상이 일에 침범하는 것을 결코 지켜볼 수 없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해외영업 구성원으로서 가장 행복할 때, 나는 웃으며 그리고 아쉬움을 머금고 이별했다. 이별할 수밖에 없는 이별이라 슬펐다. 다시는 이 사람들을 보지 못할까 봐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컸다. 첫 회사라서 가지는 온정이 아니다. 지금도 왕래하는 해외영업팀 모두가 황금기로 추억하는 걸 보면,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겐 그 시기에 첫 직장과 첫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음은 과분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테다. 

나의 주말을 버겁게 위안해주던 곳. 



 이 글을 쓰는 문득 역시라고 생각해본다. 과거에 대한 가정은 필요 없지만, 굳이 가정을 해본다. 우리의 방향 말이다. 내 방향이 해외영업이 아니었다면, 과연 나의 첫 직장에서의 경험이 이 같을 수 있을까? 가 물고 무는 꼬리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절대로 아니다'이다. 2020년 2월 29일을 기점으로 '속도는 0이 됐다'. 그래서 방향이다. 나의 방향이어야만 하는데 아니했는데, 나는 일상의 불만족 때문에 몸이 편한 방향을 생각했다. 난 곳이라면 그렇기에 내게 보다 익숙한 곳이라면, 지금과는 다를 거란 크나큰 '착각'과 함께. 타인도 생각했고, 가족도 생각했다.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나는 합의했다. 그래프가 상승됐다는 타인의 인정과 시기에 묘한 감정도 느꼈다. 고향집에서 출퇴근하며, 주말에 가족과 함께 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일상의 평온함이 일의 불편함을 상쇄시키지 못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3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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