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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부지 Aug 08. 2022

우리 한 번도 안 싸웠네?

휴가 10일을 함께 보냈지만 싸우지 않았다

우리 한 번도 안 싸웠네?


10일간의 휴가의 마지막 날, 내가 아내에게 건넨 말이다.


아내도 동의했다.


그러네 한 번도 안 싸웠네!


10일쯤 같이 지내면 한 번쯤 싸울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우리 커플은 원래부터 잘 싸우지 않는 커플이었다.

사실 연애 중에는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그래서 불안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결혼 전에 치고받고 싸워 봐야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서로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결혼을 다짐했고, 결혼 준비 과정 중에 크게 한번 싸웠다.

결국은 싸우게 되는구나 싶었다.


그 싸움을 통해 서로의 진짜 모습을 조금은 볼 수 있었지만, 이내 화해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진짜 극한의 모습은 확인하지 못한 채.




결혼을 하고부터는 큰 싸움은 아니지만 사소한 다툼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툼이라기보다는 내가 욕을 먹는 상황이 많이 생겼다.


특히 술 때문이었다.


연애 때는 술에 취한 나의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몇 번 없던 아내는 나의 술 취한 모습에 실망을 많이 한 모습이었다.

연애 때도 술 때문에 연락이 끊기거나 늦잠을 자서 아내가 잔소리를 한 적이 있긴 했지만, 실제 취한 채로 같이 있었던 적은 얼마 없었다.

(주사가 심하지는 않지만 필름을 잘 끊는 편이고 많이 취하면 잠이 든다.)


나머지는 생활에서의 자잘한 마찰 때문이다.

30년 이상을 각자의 삶을 살던 두 명이 만나 한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잔소리도 많이 들었고, 억울할 때는 잔소리에 항변도 하면서, 사소한 마찰들이 생겨나갔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하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잔소리를 계속 듣다 보니 내 안의 분노가 꿈틀거렸다.

크게 싸우지는 않았지만 2-3일간 서로 대화를 안 한적도 있었다.




진짜 싸움의 시작은 육아와 함께 시작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피로가 극한에 달하자 싸울 일이 많아졌다.


정말 사소한 것으로도 싸우기 시작했다.

그제야 왜 육아가 힘들다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모두 지친 상태에서 사소한 것들이 시발점이 되어 정말 시발 시발하게 되는 상황까지 가는 것이다.


싸움의 이유는 별 것 없다.

누구 하나가 아이를 케어하는 동안 남은 하나가 집안일을 덜 하던가,

심하게는 젖병 놓는 위치 때문에도 싸웠다.


그나마 아이가 조금 커 나가면서 싸움의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조금은 능숙해졌다고 할 수 있다.


한 명이 아이를 씻기면 남은 한 명이 설거지를 한다.

한 명이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면 한 명이 빨래를 정리한다.


말 그대로 ‘척하면 척’인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육아 초기보다는 육체적으로 덜 피곤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육아로 인해 힘든 시기를 지나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아이의 애교와 행동에 웃는 일들이 더 많아졌다.


지난 10일간의 휴가도 돌이켜보면 그랬다.


낮 시간에는 아이와 놀며 아이의 애교를 보며 웃을 수 있었고,

저녁 시간에는 아이를 재우고 오래간만의 부부만의 시간을 보내며 맥주도 한잔하고 깊은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내의 잔소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내가 으레 조심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와이프도 잔소리 전 한번 더 기회를 주는 편이기도 하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부부 생활 3년 차이니 눈빛만 봐도 서로의 Needs를 알 수 있다.


결국은 서로 맞춰가는 것이 결혼 생활이고 부부의 모습 아닐까 싶다.




p.s. 10일이 10달이 되고 10년이 되는 그날까지.

이번 휴가 10일을 기억하며.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지내자.

근데 왜 10일간 아이 사진만 있고 우리 사진은 없을까?


- 아내에게 드리는 편지, 철없는 남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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