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의 승리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내와 각각 MBTI 테스트를
해 봤는데 단 하나도 겹치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ENTP 남자와
ISFJ 여자
성향상 정 반대의 두 남녀가 만난 것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P와 J의 이야기다.
MBTI의 4자리 중 마지막 자리.
J는 계획과 체계적을 대표하고 P는 자율적이고 융통성 있음을 대표한다.
자율적인 남자와 체계적인 여자.
누가 누구를 따라가게 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러한 성향을 바꾸어 놓은 결정적 무기는 바로 ‘잔소리’다.
J의 여자에게 잔소리라는 강력한 무기가 장착되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잔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잔소리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잔소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 불편하고 불만이 생기더라도 그냥 그것을 감내하는 성격이다.
반면 아내는 타고난 잔소리꾼이다.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없다.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중에 화장실을 쓰고 나와서 불을 끄지 않고 지나치면 바로 들려오는 그 소리.
화장실 불 끄고!
눈이 뒤통수에도 달린 것 마냥 잘 알아차린다.
지난주 태풍이 오던 날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 있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셋이 함께 있다 보니 엄청난 잔소리 폭격을 들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잠자리에 누워 아내와 휴대폰을 잠시 보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내가 부모님께 보낸 카톡의 문구를 가지고 또 잔소리를 하던데 나도 참지 못하고 결국 개겼다.
아이고.. 잔소리 좀 그만 좀 해라!
잔소리꾼의 논리는 항상 일관된다.
잔소리 안 하게 잘하면 되지 좀!
마치 하얀 장갑을 끼고 관물대의 먼지를 검사하는 해병대의 점호와도 같은 느낌이다.
털어서 나올 때까지 잔소리 거리를 찾는 기분이다.
나라고 잘 안 하고 있냐면 당연히 그것은 아니다.
특히나 아내의 신경이 날카로운 날은 더 주의를 하지만 더 날카롭게 잔소리 거리를 찾아낸다.
잔소리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의 신경전.
창과 방패의 싸움과도 같이 느껴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잔소리하는 자가 언제나 승리한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잔소리 삼 년이니 사람의 성향이 바뀐다.
이것은 J의 승리였다.
나의 MBTI의 결과가 INTJ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자율적 성향인 내가 이제는 계획적이 되었다.
썼던 물건은 원래의 자리에 돌려놓아야지 잔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어디에 갈 것인지 계획을 해야하고 Plan B까지도 준비해야 잔소리 폭격을 피할 수 있다.
오늘도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남자의 노력은 계속된다.
어서 글을 발행하고 오늘 어디갈지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