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제가 부성애가 없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항상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
그것이 감기든 장염이든 내겐 사실 별 것 아니다.
그런데 아이가 이런 사소한 질병에 걸렸을 때의 부모의 마음은 많이 아프다.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생각이 매번 든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우리 아내가 더 크게 느끼나 보다.
못 말리는 모성애
지난 3월, 우리 가족에게도 코로나라는 질병이 찾아왔다.
2년을 잘 버티다가 내가 어디선가 코로나에 걸려왔다.
처음에는 혼자 이틀간 집 안의 방 한편에 격리를 했지만, 이틀 후 아내가, 그 이틀 후 아이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나로 인해 시작된 코로나.
내가 코로나에 감염되고 이틀 만에 아내가 감염되어 우리는 아이라도 지키자는 마음으로 마스크를 두 겹을 끼고 갓 돌 지난 아이를 케어했으나 24시간을 붙어 지내다 보니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아이가 코로나에 걸린 날.
새벽 내내 2시간 단위로 일어나서 체온을 측정했다.
우리도 코로나로 인해 몸이 정상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더 걱정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내가 일어나서 체온을 측정하기 직전에 항상 먼저 아내가 일어나서 체온을 측정하고 아이를 케어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니 당신 몸 먼저 챙겨, 내가 일어나서 체온 측정할게
알았다고 하고 잠든 아내.
그러나 2시간 뒤에는 또 아내가 먼저 일어나 있었다.
사실 코로나가 아니라 예방 접종 때도 그랬다.
예방 접종 후 아이에게 열이 조금이라도 나는 날이면, 아내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내가 하겠다고 하면 알았다고는 하지만 항상 나보다 빨리 일어나서 아이를 케어하고 있다.
아이의 울음이 시작되어 내가 눈을 뜨기 전에 이미 아내가 깨어난다.
아이의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깨어나는 것이다.
잠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성애가 그녀를 움직이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에 절어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채로 아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를 케어한다.
비록 아플 때뿐만이 아니다.
신혼 시절, 아이가 없을 때 하루가 멀다 하고 의문의 택배 박스들이 집에 도착했다.
대부분 아내가 열여덟 비용으로 소비한 제품들이었다.
그런 택배 박스가 바뀌었다.
아이의 용품, 간식거리를 제외하고 아내의 것은 오지 않는다.
백화점이나 아울렛에 가도 마찬가지다.
가장 먼저 아이들 옷 코너로 향하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저런 것이 모성애가 아닌가 싶다.
오늘은 당신 옷을 좀 보자
본인 옷은 됐다고 한다.
백화점 옷 안 입고 인터넷으로 대충 사 입으면 된다며 아이 옷을 보러 가자고 한다.
본인 꾸미기 바빴던 그녀가 이제는 아이 챙기느라 자신의 몸을 돌 볼 시간에 아이를 돌보고 있다.
지난 주말도 장염에 걸린 아이를 케어하느라 지쳐가는 아내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 안쓰럽다.
방법은 내가 부성애를 더 키우는 수밖에 없는 듯싶다.
오늘도 집에서 홀로 아이를 돌보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이 글을 바친다.
(실제 제 글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