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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부지 Jun 26. 2023

조기축구회가 갖는 의미와 직장인의 취미생활

아빠의 취미 생활


나는 직장인은 취미생활 1가지 이상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안 그러면 회사 생활에 너무 몰입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글을 쓴 적도 있다.


내가 조기 축구회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대학생 때였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술을 먹고 집에 가는 길에 새벽 6시부터 사람들이 모여서 축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나는 그때까지 술을 먹다 집에 가는데 저 사람들은 대체 이 꼭두새벽부터 뭐 하는 짓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졸업을 하고 회사에 들어갔는데, 우리 팀의 꽤 높은 위치의 차장님 한분이 불렀다.

축구 좋아하냐?

첫 질문이 의외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느 학교 나왔냐 어느 과 나왔냐 등의 질문이었는데.

잘하지는 못하는데, 고등학생 때 골키퍼를 좀 했습니다

입사한 극 초기니 어떻게든 나를 어필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렇게 대답했다.

“잘 됐다. 우리 부서에 조기 축구회가 있는데 토요일 새벽에 공을 찬다. 예로부터 우리 부서는 신입 사원이 조기 축구회에 나와서 인사하고 공을 같이 차는 게 전통이다. 너도 이번 주부터 나와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전통일리도 없고 저 모임에 강제로 나오라고 하는 것조차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의 나는 “예, 알겠습니다!” 하고 근 3달을 억지로 나간 것 같다. 나중에는 새벽까지 술 먹고 기숙사에 뻗어 자고 있으면 밑에 데리러 와서 깰 때까지 전화를 하더라;​


나가보니 결국은 인원 수가 모자라서 어떻게든 채워 넣는 목적이었다. 그 새벽에 22명이 모이기란 쉽지는 않은 게 사실이지. 나가보니 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금 나는 토요일 새벽에 테니스를 친다. 취미로 테니스를 배우고 5년 넘게 치면서 같이 어울리는 사람이 유부남에 애기 아빠들이 많았다. 알고 보니 육아 때문에 취미 생활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주말 새벽에 운동을 하고 애기가 깰 시간쯤에 집에 들어가는 거였다. 와이프와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고 운동하려면 내 자는 시간을 줄여서 할애하는 수 밖에는 허락받을 방법이 없는 거더라.

총각 때는 이유를 알면서도 그 마음이 잘 이해가 안 갔지만 나보다 고수들과 같이 여유롭게 공칠 수 있는 시간이 토요일 새벽이다 보니 열심히 나갔다. 이 생활이 적응이 된 채로 결혼하고 아기까지 생기다 보니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 마음이 백번 이해가 간다. 내가 자는 시간을 줄여서 운동을 한다고 하니, 허락받기가 쉽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새벽부터 대학교 운동장에 모여서 축구를 하고 있던 그분들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성실한 가장이자 직장인, 그리고 육아를 함께하며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는 취미 생활에 진심인 사람들의 모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축구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새벽에 각자의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나 포함)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에 잠을 포기한 이 시대의 아버지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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