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네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릴 적의 기억은 무엇이냐고.
곰곰이 생각을 해 봤지만, 언제가 가장 어릴 적 기억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부모님 앞에서 했던 재롱 잔치의 기억도 떠오르긴 했지만 그것이 유치원 생 때였는지 혹은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아버지께서 물었던 질문이라 그런지 아버지와 관련된 일화 하나가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 기억에 의하면 이렇다.
아마도 유치원을 다니던 어느 날, 철이라고는 당연히 찾아볼 수 없는, 젊음 보다도 더 어린 그 혈기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바빴고, 당연히 부모님은 내 체력과 속도를 따라올 리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다니던 골목길의 코너를 돌아서는 순간, 나는 뜀박질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르렁
유치원 생으로 추정되는 그날의 나, 아마도 1미터 정도는 되었을 내 키만 한 개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언제든지 돌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노려보고 있었다. 당연히 몸은 굳을 수밖에 없었고, 그 장면에서의 나의 기억은 두려움 그것 이상으로 혹은 이하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몇 초가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멀리 떨어져 계시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번개처럼 내 뒤에서 달려 나와 맹수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고, 짧고 굵은 욕설 한마디와 함께 발길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나를 안아 들고 맹수를 향해 뒷걸음질 치지 않으며 다시 한번 위협했다.
어른의 입장에서도 제법 사납고 큰 개였음에도 아버지는 용기를 내셨던 것이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이 날을 기억하고 계셨다. 그리고 내 기억 속 가장 어린 날의 기억을, 아버지의 시선으로 들을 수 있었다.
골목길에서 설치고 있는 나를 따라다니느라 진이 빠져 있었고, 코너를 돌아 사라진 내가 걱정되어 속도를 높여 쫓아오셨다고.
돌아서는 순간 너무 크고 사나운 개의 모습을 보고 아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빨리 들었던 감정은 역시나 두려움이었다고 하셨다.
순간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을 해서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물리더라도 내가 물리자
아버지도 겁이 나셨다. 하지만 그 순간 든 생각은 둘 중에 한 명이 물려야만 한다면 본인이 물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고, 그렇게 재빠르게 나와 맹수 사이로 들어오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등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 강해보이자는 생각에 겁이 나지만 발길질을 하는 시늉을 하신 거라고, 그날을 회고하셨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어서일까, 나는 아직도 큰 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어느덧 나도 한 딸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다.
과연 내가 딸내미와 함께 길을 걷다가 이런 상황을 마주치면 우리 아버지가 나를 위해 용기보다는 희생에 가까운 기개를 내셨던 것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내 정답은 ‘그렇다’이다.
딸내미가 아파서 밤에 열이 펄펄 끓는 날이면, 그 옆을 밤 새 지켜내는 것은 내가 아닌 아내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항상 자파 져 자기 때문에 욕을 먹는 편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찾아와 이 집에서 한 명은 반드시 큰 질병을 앓아야 한다고 하면 나는 선뜻 나설 자신이 있다.
아내와 딸내미가 아파서 힘든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내 몸이 아픈 것이 마음이 덜 아프다.
그래,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인가 보다.
그날의 아버지는 그렇게, 내 대신 개에게 물릴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내가 아버지가 되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그런 감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