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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부지 Dec 12. 2023

내면 깊은 곳의 슬픔

아버지의 죽음

고요한 일요일 아침의 적막을 깨뜨린 것은 잠에서 일어나는 아이의 울음소리도, 집 밖의 소음도 아닌 어머님의 전화 진동 소리였다. 좀처럼 전화는 먼저 하지 않는 어머님이기에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고, 전화기 너머에서 큰 울음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성이 경상도 남자인 나는 스스로 내면이 강하고 냉정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영화를 보며 우는 것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으며 웬만한 슬픔에도 눈물을 보이는 경우는 잘 없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내면 깊은 곳의 슬픔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님의 짧은 한마디는 그렇게 나의 내면 깊은 곳에 들어갔고, 곧 슬픔이 되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슬픔에 온몸이 반응했다. 참으려 할 틈도 없이 눈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왔고, 입에서도 계속해서 흐느낌의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하필이면 아내가 집을 비운 날 벌어진 일이었다. 옆에서 놀란 아이가 쳐다보기에, 아이에게만큼은 슬픔을 감추고 싶어, 아이를 품에 안고 한참을 울었다. 조금은 안정되는 듯하여 아이의 아침을 차려주려 하였지만, 다리에 힘은 풀렸고 눈물은 왈칵왈칵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를 모시고 회사에 돌아온 첫날이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문상을 와 주신 분들께, 부조를 보내주신 분들께 인사를 드리던 참이었다.


평소 업무에 있어서 굉장히 냉정하고 칼같이 대하던 한 선임이 있었는데, 친한 동기는 퇴사를 하며 저 사람이 문제라고 말할 정도였다. 업무적으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 인사만 하고 지내던 분이 웬일인지 내게 부조를 보내왔다.


인사를 드리러 찾아뵙자, 굉장히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따뜻한 말을 건네어 왔다.


나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네 맘 잘 알고 있다


의외의 말이었다. 40대 중반인 그는 회사에 입사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평소에는 굉장히 냉정하고 칼 같던 그가 계속해서 따뜻한 말을 건네어 왔다.


아쉬움도 많이 남고, 후회도 많이 남을 것이라고. 앞으로도 문득문득 그런 아픔이 계속해서 생각날 것이라고.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가 가장이니 힘내서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장 많이 들었던 위로의 말은 ‘누구나 한 번은 겪는 일이니 힘내라’는 말이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의 죽음을 경험해야 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를 잃는 사람도 있고, 30대 후반에서야 경험한 나보다도 빨리 같은 일을 경험한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물론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평균 이상으로 살다가 돌아가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오래 살아계신다고 해서,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빨리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 슬픔이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서 슬픔의 강도는 다를 수 있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후회스럽고 아쉽게 느껴지겠지만, 갑작스레 맞이한 이별 이후 찾아오는 충격은 더 크게만 느껴졌다. 내게 따뜻한 말을 건네었던 선임은, 그런 충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본인도 이미 겪었으니 내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넨 것이 아닐까.


업무 적으로 만났을 때 가장 냉정하고 강인해 보였던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러한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내면 깊은 곳의 슬픔을 그렇게 감춘 채, 아니 억지로 감추기 위해서 더욱 냉정한 모습으로 회사 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이제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내게는 크나큰 슬픔이 되었고,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으셨다. 평생을 효도하지 못한 자식인 내게 마치 ‘있을 때 잘하지’라고 말씀하시며 더욱 깊은 곳으로 자리를 잡으신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누구나 후회와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그 시점이 아무리 어릴 적이더라도, 아무리 내가 나이가 든 이후일지라도 말이다.


이제는 받아들여야만 한다.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으신 아버지라는 이름의 슬픔을, 나는 평생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이 슬픔을 결국은 아름다운 이별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숙제이자 삶을 살아가는 지혜일지도 모르겠다.


제가 짊어질 짐이라면, 짊어지겠습니다. 아버지는 이제라도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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