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달렸던가?

나, 달릴 수 있니?

by 윤아부지

달리기로 마음을 먹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까지는 좋았다. 아니 훌륭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야지, 해야지’라고 마음만 먹고,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나는 그것을 해낸 것이다.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그것도 이 새벽에 (4시 45분 기상함).


그렇게 출발은 했지만, 달리러 가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과연 나는 언제 제대로 달려봤는가? 달리러 나온 과정까지는 아주 훌륭했지만, 가는 길에는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제대로 달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무작정 나섰을 뿐이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 봤다. 스스로 자신감을 얻고 정신 승리하기 위해.


크게 세 가지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체육 대회 때 공책 몇 권 받아보고자 열심히 달렸던 기억은 제치고, 제대로, 무엇인가 진심을 담아서 달려봤던 기억은 이렇다. 구차하게도 유치원 생 때의 기억까지 총동원을 했다.


첫 번째로 가장 먼 기억은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고학년쯤 되었던 어느 날의 기억인데,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나를 포함한 두세 명의 친구들이 점심시간의 그 짧은 휴식 시간을 틈타 운동장을 하염없이 뺑뺑 돌았던 기억이 있다. 점심시간의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축구를 하며, 야구를 하며 놀고 있는 사이에 묵묵히 운동장을 뺑뺑 돌았던 것이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운동장을 수 십 바퀴는 돌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생애 첫 장거리 달리기였던 것이다.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뛰고 싶었나 보다. (포레스트 검프?)


두 번째의 기억은 남자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군대’에서의 달리기다.


이것은 사실 자의보다는 타의에 가까운 달리기다. 군대에서는 아침마다 구보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지는 않지만, 웬만한 날씨라면 구보를 한다. 나는 군 생활을 강원도 철원에서 했는데, 입대 후 신병 교육대에서 거의 매일 달렸고, 이후는 최전방 철책근무로 배치를 받게 되어 약 7 개월 간은 그나마도 달리지 않았다. 최전방의 철책 근무는 잠이 가장 소중한 곳이기에, 별도로 단체 구보와 같은 체력단련 시간이 없다. 대신 철책을 따라 하루에도 몇 킬로미터씩 무거운 탄약통을 메고 산길을 오르내리긴 했다.


최전방 철책 근무를 마치고 FEBA, 즉 최전방에서 나름의 후방으로 철수를 해서부터야 매일 아침 구보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추운 강원도 철원의 겨울에 상의까지 탈의해 가면서, 군가를 불러가면서 그렇게 달렸던 것이다. 실제로 초반에는 낙오하는 병사들이 제법 있었다. 끝까지 달리지 못해 중도 포기한 병사들도 있었고 심지어 토를 하며 쓰러지는 병사도 있었다. 머 얼마나 긴 거리를 달렸겠냐마는 내 나름 인생에서 가장 긴 거리를 가장 오랜 기간 달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행인 것은 나는 토를 하거나 낙오한 병사는 아니었다. 자신감 +1.


세 번째 달리기는 아부다비 파견 기간 동안의 일이다.


당시에 나는 두 명이 파견을 나가 같은 숙소에서 생활을 했는데, 함께 파견 나간 선임이 건강 삼아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주 2회 정도 함께 뛰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당시에 ‘나이키 런 클럽’ 어플을 알고 있어서 설치 후 기록하며 달렸기에 찾아볼 수 있었다. 6킬로 정도 되는 거리를, 1시간 10분 정도에 달렸으니, 사실 달렸다(Run)기 보다는 조깅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킬로당 12분대로 달렸으니, 이건 사실 빨리 걸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둘이 대화를 함에 아무런 무리가 없었고, 너무 더운 날씨 탓에 그렇게 빨리 달릴 힘이 없었던 탓도 있다.


네 번째 기억은 마라톤의 기억이다.


전 여친 (현 아내)과 부산의 10킬로 마라톤에 참여한 적이 있다. 동네에서 20분도 안되게 한번 연습해 보고 바로 참여를 했었는데, 80분이 넘게 걸려 완주했으니 사실상 반 이상은 걸었다. 달린 기억보다는 전 여친과의 좋은 추억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렇게 달렸던 기억을 더듬어 (짜내어) 생각을 정리해 보니 조금은 불안감이 해소되었다. ‘나는 달릴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으며, 유치원 시절 그리고 초등학생 시절 결승선을 1등으로 통과하며 공책을 받고 손등에 도장을 찍은 좋은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 그렇게 느리지 않잖아 ‘라는 자신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기로 계획한 장소에 도착해서, 나름의 러닝화로 갈아 신고 준비운동도 무엇도 없이 자신감 하나에 기대어 첫 발을 내디뎠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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