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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팔아 와이프 명품백 사주기 프로젝트

CRS(Crystal Red Shrimp) 1탄

by 파도 작가

물고기를 키우다 보니 자꾸만 다른 물고기들에게도 눈길이 갔다. 그중 특별히 나를 유혹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 바로 이름도 찬란한 '크리스탈 붉은 새우'였다.


영어로는 Crystal Red Shrimp, 줄여서 CRS라고 불리며, 물생활 마니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애완용 새우였다. 크기는 겨우 엄지손톱만 했고, 줄자로 재보면 다 큰 아이가 1~1.5cm였다. 놀라운 점은 등급에 따라 한 마리에 1만 원에서 100만 원을 훌쩍 넘는 개체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가격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게 정말일까? 100만 원이 넘어가는 애완용 새우가 있다고? 백번 양보해서 있다고 하더라도, 이 가격을 주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의심을 품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CRS가 우리 집 어항 속에서 매우 우아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며칠 후, 새우 최대 물생활 카페 '새사사'에 가입했다. 가입하자마자 벼룩시장(분양) 게시글을 검색했다. 아아아 ~ 정말로 백만 원이 넘는 고가의 새우들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루머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부럽다. 나도 CRS를 한번 키워볼까? 나도 물생활 내공(?) 은 남 못지않았기에, 자신감이 뿜뿜 올라왔다.


새우를 분양하시는 고수님들은 단순히 새우를 키우는 게 아니었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듯, 발색이 좋고 체형과 패턴이 아름다운 개체를 수년간 정성스레 길러 형질을 고정시켜 자신만의 품종을 만들어냈다. 물생활 분야에서는 이분들을 ‘전문 브리더’라 불렀다.


그들이 기르는 새우는 하나의 브랜드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아주는 존재였다. 그 유명한 이름 가운데 나는 ‘명가혈 R100’ CRS라는 개체가 참 마음에 들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고요하고 단아했으며, 바디라인 전체가 백옥처럼 하얗고 윤기가 흘렀다. 갑(표피)은 두꺼운 갑옷처럼 견고했고, 다리는 붉은색이었다.

이 개체가 한 쌍에 1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정말 갖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탐이 나도 가정의 평화를 깰 수는 없었다. 이미 거실과 주방에는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물고기들이 너무 많았기에. 이 상황에서 한 쌍에 100만 원이 넘는 애완용 새우를 산다고 하면 “이 양반이 미쳤나?" 하는 소리가 거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질 게 뻔했다.


나는 어떻게든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야 했다. 내가 누구인가. ISFJ! 고도의 전략가 아닌가. 어느 불금 밤, 와이프님이 가장 좋아하는 치맥을 먹으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여보, 작은 애완용 새우 알지? CRS라고… 잘 키우면 돈 벌 수 있대. 한 번 키워볼까?” 별 반응이 없었다. 와이프의 눈빛을 살피며 나는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


“내가 잘 키워서 돈 벌면 1순위로 여보 명품백 사줄게. 어때?” 와이프는 처음에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명품백’이라는 말에 급 관심을 보였다.

“정말? 명품백 사준다고? 에이, 이렇게 돈 벌기가 어디 쉽겠어? 쉬웠으면 벌써 다들 했지.”


“뭐야! 내 실력을 의심하는 거야? 나 못 믿어? 나 이래 봬도 10년 동안 물고기 키운 베테랑이라고!
여보가 승인만 해주면 내가 잘 키울 자신 있어. 꼭 명품백 사줄게.” 내가 이렇게 호언장담하자, 와이프는 마침내 무겁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 그럼 꼭, 명품백 약속한 거다.”


나는 그렇게 약속했고, 그 순간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이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2탄에 계속, 과연 명품백을 사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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