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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링브린 Dec 03. 2020

휴직, 코로나 일상으로 채우다

 가장 중요한 걸 얻었다

 며칠 전 첫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앱 알림이 울렸다. 왠지 불안하다 싶더니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등교 안내
내일부터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적용으로 1학년은 주 2회 등교로 전환됩니다.   


아이가 매일 등교를 하게 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제 막 학교 다니는 재미를 알게 된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방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도 알림을 받았나 보다. 서로 마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에휴, 다시 시작이구나..’      








 올해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육아휴직을 냈다. 초등학교 1학년은 부모가 챙겨야 할 것이 많은 시기이다. 대부분의 나의 선배들은 이맘때 휴직을 하거나 회사를 떠났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퇴사와 휴직을 고민해왔고, 드디어 올해 휴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른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휴직과 동시에 COVID19가 시작된 것이다. 


봄을 알리며 신학기가 시작되는 3월, 모든 일상이 멈춰버렸다.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식을 치르지 못했다. 몇 달 동안은 유치원생도 초등학생도 아닌 애매한 상태였다. 둘째 아이도 유치원 입학을 건너뛰었다. 남편은 당분간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가족 모두가 하루아침에 집 안에 갇혀 버렸다. 


연일 코로나 확진자 수가 증가하며 전국은 팬데믹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작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아들 둘 독박 육아를 해야 한다는 거였다.


나는 평소 아이들에게 무서운 엄마였다. 회사를 다니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특히 바쁜 아침 시간에 아이들을 많이 다그쳤다. 밥을 먹을 때도 옷을 입을 때도 꾸물거리는 아이들 때문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 퇴근 후에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나면 체력이 늘 바닥이었다.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하면 남편을 불렀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밥해주는 사람이고 아빠는 재밌게 놀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은 매일 밤 배게를 들고 아빠 옆으로 갔다. 나는 아이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나도 인기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휴직을 하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했었다. 아침에 여유 있게 아이들을 챙겨서 학교에,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남보다 일찍 데려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루 24시간을 돌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과 온종일 함께 지낸다는 건 나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예상대로 독박 육아는 쉽지 않았다. 세끼 밥상을 차리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지나갔다. 살림에 허덕이느라 육아는 그냥 방치되는 듯했다. 아이들은 둘이서 같이 잘 놀다가도 금세 울고불고했다. 주로 동생이 억지를 부리고 형이 당하는 그런 패턴이었다. 둘 중 한 명이 울고 내가 중재를 해야 끝이 났다. 남편은 재택근무에 적응하느라 육아에 동참하기는 어려웠다. 늘 방 안에 갇혀 화상회의를 했다. 아빠가 집에 있으니 아이들이 방에 자주 들락거렸다. 아이들을 방에 못 들어 가게 단속하는 것도 내겐 큰 스트레스였다. 결국, 이럴 바엔 그냥 출근을 하라고 남편을 내보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육아인데 방해 요소를 최소화하는 게 나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육아가 조금씩 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들던 요리와 살림이 훨씬 수월해졌다. 내가 가장 취약했던 화장실 청소까지 척척 해냈다. 아침마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보니 아이들을 다그칠 일이 줄었다. 음식을 준비하며 눈으로 입으로 아이들과 놀아줄 여유도 생겼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놀이를 시도했다. 학습도 놀이처럼 했더니 아이들이 너무 즐거워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자기 전에 배게와 책을 들고 내 옆으로 왔다.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엄마가 되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나와 가까워지니 나도 이제까지 못 보던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왜 그동안은 늘 부족한 모습만 보였나'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휴직을 하지 않았으면, 코로나를 겪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지 모른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가 축복이란 걸 알게 되었다. 








 코로나 3차 유행이 시작되며 다시 일상이 멈춰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를 겪으며 우리 가족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가족과 건강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것만으로도 이번 휴직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올 겨울도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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