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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무개 Jun 16. 2024

바람 쐬기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두운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찰스디킨스)는 순식간에 3분의 1 지점까지 왔다. 위대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 그런 것인지 최근 들어 더 표류하는 내 정신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난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골치 아픈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읽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기구한 데이비드코퍼필드의 생애를 상상하며 온전히 동정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잠시 피로한 눈을 쉬기 위해 읽기를 멈추고 다시 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게 되면 내 삶과 현재에 대해 다시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좋은 일이다.


살면서 꽤 많은 순간 답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늘 답이 있는 삶이란 있을 수가 없는 까닭이다. 이런 생각은 고민의 기간이 길어지면 반드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부정적 결론으로 귀결된다. 반복되는 생각은 마치 부정적인 결론으로 끝나야만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다는 무지한 생각을 강화해 도처에 희망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듯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상당히 무력해진다.


여하튼 나는 오늘 아침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고, 오는 내내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생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불쌍하고 여린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진심으로 동정하며 나는 그간 누적된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고 다소 희망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종종 타인의 불행이 내게 희망을 주는 역설은 어쩌면 인간이 타고난 가장 간악하고 나약한 이기심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 사고를 하는 인간을 가장 경멸하지만 나도 사람이라 그런 것인지 가끔 내 안에서 가장 경멸하는 인간상을 찾아내기도 한다.


날은 맑고 초여름의 바닷바람은 청량하다. 미팅을 가는 택시 안에서 나의 기분은 충분히 개선되었다. 미팅을 마치면 아무도 모르는 바닷가 인근 카페 구석자리를 찾아 아직 3분의 2나 남아있는 소설 속 주인공이 더 행복해지길 기대하며 책을 마저 읽을 생각이다.


난 이렇게 바람을 쐬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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