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계약 1년 후, 출판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by 훈남아빠

“작가님 의지가 확고하시니, 일단 내긴 해보는데 계약할 때보다 부수를 줄여서 내보시죠.”


마음을 거의 비우고 있었는데 빛줄기가 쏟아져 내려와 가슴에 안겼다.


“아 네! 감사합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부수가 몇 권이고 뭐고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저 원고가 사생아가 되지 않고 세상에 나올 수만 있다면 뭐든 다 괜찮았다. 대표님에게 마지막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고 회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 후에 이메일 회신이 왔다. 즐거운 마음으로 이메일을 열어 보았다. 대표님은 원고를 거의 다 엎어야 할 거 같다고 하셨다. 육아에 대한 정보도 추가해야 하고 에피소드마다 더 깊은 성찰을 넣어야 할 거 같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을 해봐도, 육아 전문가가 아닌 내가 쓸 수 있는 육아 정보는 가치가 떨어져 보였다. 그리고 이미 원고를 쓴 지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 나는 한창 육아할 때 당시의 생생한 느낌이 거의 빛바랜 상태였다. 경험이나 순간들을 애써 떠올릴 수는 있어도, 1년 전 육아휴직하고 육아에만 전념하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육아 경험에 관한 생각도 감정도 너무 달랐다. 거기다 1년 만에 이렇게 피드백을 받고 나니, 다시 내가 원고를 싹 다 고쳐 쓴다 해도 그 원고는 또 언제 세상에 나오게 될지, 나올 수는 있을지 더더욱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나는 출판 계약 1년 후, 출판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복합적인 감정들이 너무 빠르게 쏟아져서, 내가 어떤 마음인지도 잘 알기 어려웠다. 그때 그 사이로, 분노라는 감정이 강하게 비집고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달콤한 인생>의 명대사도 떠올랐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이 복합적인 감정이 대표님에 대한 원망으로 넘어가려던 순간, <달콤한 인생>에서의 해답도 떠올랐다. 정처 없이 방황하며 복수하는 주인공에게 황정민 분의 백사장은 말한다.


“너 뭐야 그 표정은? 억울해?”, “왜 자꾸 딴 데서 찾는 거야?”


결국 문제는 나였고, 해결해야 할 사람도 나다. 대표님이 1년 전에 그렇게 내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지금의 상황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에이, 역시 잘 안되네?’ 하고 혼자 글을 쓸 뿐,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기 위한 글을 쓰진 못했을 거다. 대표님은 갇혀 있던 나의 세상에 작은 구멍을 내어 빛을 보여준 사람이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그분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원망할 대상조차 없자 이 복잡한 마음은 갈 곳을 몰랐다. 혼자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 데서 멍하게 서 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자, 가족들은 많이 놀라 보였으나 열심히 위로해주었다.


“여보 그래도 100만 원 계약금 받아서, 우리한테 멋진 선물 많이 해줬잖아요. 거기까지 여보가 간 것만으로도 정말 멋진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따뜻한 온기에도 마음은 데워지지 않았다. 그 원고를 1년 동안 품고 있다 보니 이미 나의 장기처럼 몸에 딱 붙어서 버릴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처음 원고 투고할 때는 ‘뭐, 되면 좋지!’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제는 그런 정도의 마음이 아니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 안의 열정을 보았다.


‘그래 어떻게든 출판해보자. 단 한 권만 세상에 나오더라도 나는 출판을 해야겠다.’


나는 무조건 출판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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