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올해는 출간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내년 3월 전까지는 어떻게 출간을 진행해 보시지요.’
손가락을 떨며 문자를 발송할 때는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던 긴장감이 문자를 받고 한순간에 바닥으로, 철퍼덕, 꺼졌다. 긴장감으로 가득 찼던 온몸이 텅 비면서 생긴 공허함이 빨리 뭐라도 채워 달라며 날뛰기 시작했다. 그 공허함에는 슬픔과 분노, 아쉬움, 막막함 등이 조금씩 자리했다.
가족들에게는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혼자 남겨진 시간에는 먹먹함에 글쓰기 의욕이 탕진됐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 러닝을 나가기도 하고 쇠질에 더욱 매진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생각들은 더욱 끈덕지게 붙어오기 시작했다.
‘벌써 계약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 원고가 책으로 나올 수는 있는 걸까?’, '지금까지 오탈자를 고치거나, 원고를 수정하거나 한 진척이 하나도 없는 걸.',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는 주변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애써 잊고 지내다가, 밤에 눈감았을 때 불현듯 책 생각이 나면 뒤척뒤척하며 잠을 잘 못 이뤘다.
‘어쩐지 너무 과한 즐거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더라니.’
내 능력에 비해 너무 과하게 축배를 들다 보니, 잔뜩 땡겨서 결제했던 청구서를 이제야 치르는 듯했다. 출판 계약을 맺었다는 것, 누군가는 더없는 축복이라 생각하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지옥이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절망했다. ‘책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어 보였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어찌어찌 지나가고, 어쨌든 봄은 다시 왔다. 여전히 대표님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자, 애써 믿고 있던 불안감은 점점 확신이 되어갔다. 하지만 어쨌거나 대표님의 입으로 확실한 중단을 말한 적은 없기 때문에 다시 연락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출판에 대한 어떤 기대감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표님께 연락해 보려니 가슴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3월 즈음에 대표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핸드폰을 들고 주변을 뱅글뱅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렇게 설마 수신 거부당하는 건가?’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게 있다고…?’
실제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체감상으로는 영겁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였다. 애써 무음에서 알람으로 바꾸어 두었던 핸드폰이 드디어 울려댔다. 조심스럽게 핸드폰 근처로 다가가서 실눈을 뜨고 핸드폰화면을 들여다 보며 이 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대표님이었다.
“작가님, 아 작업을 좀 하느라 지금 확인했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너무나 경쾌한 그 한마디에 몇 년 묵었던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잠시 서로 안부를 묻다가 책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대표님은 잠시 숨을 고르시는 듯하더니 침착하게 말했다.
“아 그 원고 너무 오래 묵히긴 했습니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