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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아빠 Oct 31. 2024

출판 계약서를 작성하다

책의 역사에 나도 함께 하리라

대표님과 출판 계약 일정을 잡고, 점점 약속된 날짜가 다가왔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하고 파주 출판단지로 향했다. 비가 올 듯 말 듯, 흐릿하고 높은 습도로 무거운 날씨였다. 파주 출판단지는 처음이었는데 도착하고 내부에 들어서자 사방의 모든 벽이 책으로 빽빽하게 덮여 있었다. 책이 너무 많이 꽂혀 있으니, 이 책들은 한 권 한 권의 책들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였다. 그 책 한복판에 서 있는데, 이 엄청난 책들의 역사 속에 나도 작은 점이라도 더하는 거 같아 몸이 가볍게 떨릴정도로 영광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동안은 책에 있어서 철저하게 소비자의 역할만을 해왔으나, 이제 나도 이 책의 역사에 함께 하는 듯한 마음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 ‘아 이 사람들은 출판계 사람들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가 다시 한번 나도 이제 출판과 관련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혼자 생각하고 웃음 지었다. 지금 와서 보면 ‘뭘 그렇게까지…?’ 싶지만 당시에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책들의 역사 가운데에 대표님이 앉아 있었다. 대표님은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캐주얼한 복장에 매력적인 외모, 거기에 눈빛은 소년처럼 순수해 보이는 분이었다. ‘역시 나는 사람 복이 많아서 이 출판 세계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조차도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는구나.’ 


계약서를 작성하러 가기 전에, 출판계약시 주의 사항 등을 살펴보고 갔다. 그런데 대표님은 모든 것을 작가에게 최우선하여 작성해 주셨다. 인세 비율은 보통 신인 작가들은 8%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대표님은 10%로 해주셨고, 계약금이나 저작물의 사용 등 모든 부분에서 작가를 우선해 주는 계약이었다. 대표님 뒤로 번쩍번쩍 빛나는 후광이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내 도장이 쾅쾅 찍혀 있는 출판 계약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투고를 하기 전, ‘내 책이 출판된다면?’ 하고 끊임없이 상상해 보았다. 일단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런 일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고.. 음…?’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직장에서는 뭐라 할까? 친구들은? 상상해 보면 해볼수록 과도하게 분비되는 도파민에 시야가 흐려지며 아찔할 정도였다. ‘보통 현실보다는 상상할 때 더 즐거운 법이지.’하며 터져 나오는 흥분을 좀 진정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출판을 하게 되자,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엄마는 전화로 전해 듣고 울컥하시며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으셨다. 장인장모님은 엄청나게 놀라시며 나를 이작가라고 불러주셨다. 아내와 아기에게도 “어디 감히 작가와 겸상을 하나!”하고 너스레를 떨다가 ”아… 내가 바닥에 앉아서 먹으라고? 아 잘못했어….”하며 유치한 장난을 하기도 했다.




며칠 뒤 대표님은 계약금 100만 원을 보내주셨다. 같은 돈을 쓰고도 참 다르게 쓸 수 있다는 걸 느낀 건, 대표님은 100만 원을 보내주시며 “작가님, 잘 만들어서 잘 팔아보겠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카톡으로 나는 영원한 대표님의 팬이 되었으며, 핸드폰을 두 손으로 받들고 대표님이 있을 북쪽 방향을 향해 넙죽 인사를 했다. 


내가 쓴 원고의 주인공은 대체로 아기이고 아내였다. 그래서 이 100만 원으로 아기에게 강아지 장난감, 캠핑의자, 책 세트, 조명, 모자 등 사주고 싶던 것들을 사주었다. 아내에게는 아내가 사고 싶다고 했던 팔찌를 사주었다. 양가 가족들을 만나서는 모두 장어를 한 번씩 샀다. 처남까지 따로 만나서 맥주도 사주었다. 100만 원의 밀도는 엄청났고, 그 모든 지출의 과정마다 도파민이 터져 나왔다. ‘아…! 1억을 용돈으로 쓴 거보다 더 행복한 거 같다!’

‘아 아니지… 1억은 좀 심했네...’


아무튼 다시 요약하자면 상상 그 이상으로 행복했다. 이렇게 기뻐하며 준비되는 대로 나머지 원고를 대표님께 보냈고 어느새 여름이 다가왔다. 대표님은 한두 달 이내에 출판을 하자고 말씀하셨다. 이제 출판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으니, 친구들에게도 슬슬 이야기했다. 친구들도 내가 대충 열심히 사는 건 알고 있었지만, 책을 출판할 줄은 몰랐다며 이작가라고 불러주며 출판 소식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렇게 여름 끝에 나올 나의 책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앞선 <공무원 부업 실패기> 브런치 책에서 계속 썼던 표현 중 내가 좋아하는 표현은 단순하지만 강렬한, 바로 이 문장이다.

역시 인생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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