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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아빠 Oct 21. 2024

투고 메일 전송 버튼을 눌렀다

받아라 출판사

투고를 위해 출판사를 찾다 보니 마치 적당한 높이의 산에 올라가서 주변 정경을 둘러볼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이 수많은 집 중에 내 집 하나 구하기가 이렇게 힘든 것인가?!’ 지천에 정말 많지만 내 것은 없는 집처럼, 출판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훨씬 많았고, 그럼에도 그중에 내 책을 출판해 주겠다고 선뜻 나설 출판사는 왠지 그리 많지 않을 거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이름을 얼핏 알고 있는 출판사들은 내가 생각한 거보다 더 대단한 규모의 출판사였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출판사계의 삼성이며 LG였다. 


당시 나는 여전히 ‘허세가 아니라 기세다!’라는 생각에 취해 있을 때라, 대기업 출판사 몇 군데를 추렸다. 내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 뒤에 커버를 보니 출판사 이메일들이 적혀 있었다. 7개 정도 추려 냈다. 인터넷에서 ‘투고 시 유의 사항’ 들을 읽어 보니, 상대가 전체 메일로 보냈다는 것을 수신자가 알 수 있으니 개별 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하긴 무려 내 책을 좀 만들어서 팔아주세요 하고 보내는 투고 메일인데 전체 메일로 한 번에 죽 보낸 메일인 게 티가 나면 좀 성의가 없어 보이겠군.’ 나는 설득이 되어 끄덕이며 읽었다. 


거기에 기왕이면 메일을 보낼 때마다 해당 출판사에서 출판된 책들에 대해 가볍게 언급해 주거나, 해당 출판사에 대한 소소한 애정을 풀어놓으라고도 했다.

‘에이, 본질은 원고지 그런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하며 출판사에 대한 내용은 생략하려고 하다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진행하는 일도 바빠 죽겠는데, 메일은 산더미 같이 쌓여서 와 있다. 커리어가 반짝반짝 빛나는 작가들의 투고 메일도 꽤 있을 것이다. 그중에 신인 작가인데, 예의가 없는 메일이나, 너무 성의가 없는 거 같은 메일은 그냥 내용을 읽어 보지도 않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길게 쓰진 않았지만, 해당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 한두 권 이름을 쓰고 가벼운 인사를 메일 막바지 내용에 추가로 넣었다. 메일 내용을 보고 첨부된 파일을 클릭하게 하는 것까지가 투고 메일의 역할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내 상황은 그런 클릭을 유도하는 내용을 쓰기가 쉽지는 않았다. 나라면 누가 썼는지 영향력이 좀 있는 작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거 같고, 에세이는 신인 작가보다는 기성 작가를 선호할 거 같았다. 에세이보다는 분명한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식 기반의 전문 서적이 더 유리할 거 같았다. 뭐 하나 해당되는 게 없으니 믿을 건 기세뿐이었다.



막상 그렇게 작성을 하고 메일을 보내려 하니 마치 내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거 같은 불편한 느낌에 휩싸였다. 이 메일을 보내면 안 될 거 같은, 온몸을 감싸는 강렬한 거부감에 몸을 잠시 가볍게 떨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마다 하는 행동처럼(사실 지금도 그렇다.) 눈을 질끈 감고 그냥 보내버렸다. 보내고 나서는 ‘아 이제 쿨하게 기다리자. 원래 사람 간의 인연이든 뭐든 너무 질척거리면 매력이 없지. 쿨하게 기다려 보자고.’하며 덤덤하게 앉아 있었다. 3초 정도.


나는 보낸 메일함에서 정처 없이 새로고침을 다시 누르며 상대가 수신을 했는지 확인했고 인터넷에 투고 관련된 대부분의 글은 다 찾아서 읽어 보았다. 인터넷에서는 2주 정도 후에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원고가 맘에 든다면 1-3일 안에도 연락이 온다고 했다. 그리고 계약을 원하면 메일로 답이 오기보다는 전화나 문자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메일을 보낸 후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정신은 온통 ‘답신’에 쏠려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띠링!”


네이버 창에 알림이 떴다.

회신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나의 심장은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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