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을 좀 출판해 주시지요.(제발)
투고를 하기 전, 일정 분량의 원고를 모으기 위해 계속해서 아빠 육아와 관련된 글을 썼다. ‘아빠 육아’ 관련해서 글을 쓰겠다고 아예 맘을 단단히 먹고 있자, 아기를 멍하게 보고 있다가도 핸드폰 진동 알람이 오듯, 머릿속에 글감들이 떠오르곤 했다. 특수 안경을 끼고 보면 안에 감춰져 있던 색들이 튀어나와 입체적으로 보이는 그림책처럼, 갑자기 아기 주변의 많은 것들이 글 주제로 팡팡 튀어 올랐다. 처음에는 넋 놓고 있다가 그런 글감들을 많이 놓쳤다. 그러다가 핸드폰 메모를 최단 방법으로 띄울 수 있도록 설정해 놓고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바로 메모장에 기록했다.
다른 성격의 글을 쓸 때와는 다르게 글 쓰는 데 압박이 크진 않았다. 항상 ‘음…?’하며 껌벅이는 커서와 말 없는 대화를 하곤 했는데 정제되진 않았지만 글은 술술 써졌다. 그런데 원고가 슬슬 쌓이기 시작한 후부터는 이제 새로운 국면이었다.
출판사에 내 책을 출간해 달라고 출간 기획서를 작성하려 보니, 참고가 될만한 여러 글을 읽어도 참 막막했다. 결국 출판사에 내 책을 왜 출간해야 하는지, 내 책이 왜 팔릴 책인지를 설득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종종 입장 바꿔 생각해 보는 습관이 있는데, 내가 출판사라도 신인 작가의 책을 별로 출간하고 싶지 않을 거 같았다. 나는 책을 늘 사서 보는 습관이 있어 한 달에도 몇 십만 원씩 책을 사기도 하지만, 내 주변에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책 시장은 잘 팔리는 책 일부 빼고는 정말 안 팔리고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하나 보장되는 게 없는 신인 작가의 책을 출간한다는 건 출판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너무 클 거 같았다.
그제야 한 번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던 ‘소통 창구’를 가지고 있는 게 얼마나 큰 메리트가 되는지를 깨달았다. SNS가 인생의 낭비라며 카카오톡을 제외하고는 인스타나 페이스북은 계정을 만들지도 않았던 나였다.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소통 창구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졌다. 부랴부랴 SNS를 이것저것 만들어 보긴 했으나, 그런다고 갑자기 팔로워들이 늘 것도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간 기획서라도 열심히 작성해서 출판사의 관심을 끌어보자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분야는 그냥 글을 쓰는 작업과는 성격이 굉장히 달랐다. 이건 책 쓰기가 ‘감성적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출간 기획서, 아니 출판의 과정은 철저히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며 냉철한 판단력을 요하는 일 같았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1. 출판 시장을 분석해서 블루오션을 찾고, 내 책이 시장에 나와야 할 이유를 찾는다.
2. 그 분석에 맞게 책의 방향성을 세우고, 목차들을 작성한다.
3. 이렇게 설정된 책의 방향성에 맞게 자료들을 찾고 원고를 작성한다.
출간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책은 이렇게 만드는 게 맞는 방법 같다며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그렇지 이렇게 해야 시장의 수요에 정확하게 맞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책이 나오겠지. 결국 책은 나 좋자고 내는 게 아니라 읽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되는 거니까.”
그런데 뭘 분석하고 꼼꼼하게 계획하고 이런 성격의 일들은 그냥 보기만 해도 기운이 빠졌다. 성격에 안 맞는 일이라도 해야 할 과정인 거 같으니 방법은 없었다. 의자를 뒤로 쭈우우욱 빼고 상반신 끝만 물에 젖은 대걸레 마냥 책상에 걸쳐 놓고 작업에 착수했다.
나름대로 시장을 분석한다고 ‘아빠 육아’ 관련한 키워드를 인터넷 서점 3사에 검색했다. 아빠 육아 책들을 사서 보기도 하고 밀리의 서재로 읽어도 보았다. 그런데 대체로 ‘아빠 육아’ 책들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 어린이가 된 아이를 아빠가 돌보는 책들이 많았다. 아니면 아예 육아법과 관련된 방법론적인 서적이 많았다. 그래서 ‘10개월 밖에 안된 아기를 아빠가 돌보며, 유쾌하게 쓴 에세이’로 방향을 잡았다. 방향을 잡고 나니, ‘아니 유쾌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고 아기가 없는 사람들은 아기의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없을 거고, 아기가 있는 사람들은 아기와 사투하느라 바빠서 이런 에세이를 읽을 여유가 없을 거 같은데…?’, ‘이거 공급이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던 게 아닌가!?’하는 아찔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으나 애써 흐린 눈을 하며 모른척했다.
“어쨌든 유쾌하고 나름대로 감동도 있으니 됐어. 음 오케이! 됐어! 유쾌 속 감동! 오케이!”
아무튼 이 방향에 맞게 목차를 짜고, 원고의 제목들을 수정했다. 그다음으로 출간 기획서를 작성할 때, 나름대로 양념을 쳤다. 한글 파일 한 장에다가 그냥 글로만 작성하지 않고, 파워포인트로 그림 위주의 출간 기획서를 작성한 뒤 pdf파일로 저장했다. 뭐 그래봤자 별 건 없었다. 처음의 의도는 ‘출판사 편집자 분들이 하루에도 수 십, 수 백통의 투고 메일을 받는다는데, 그림 위주로 만들어서 글 좀 덜 보게, 좀 더 흥미가게 만들어야지.’ 하는 의도였다. 그런데 원래 마음이 쪼들리면 말이 많아지는 법이라, 굵직한 설득 포인트들이 없으니 잔챙이 같은 글만 많아졌다. 그냥 ‘그림 + 글 왕창’의 형태였다. 오히려 편집자 분들은 시각적으로 불필요하게 피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출간 기획서 pdf 파일 하나 만들어 내고, 써 온 글 중 잘 쓴 글 몇 개 이어 붙여 원고라는 형태로 만들어 놓으니 꽤 뿌듯했다.
이제 이 원고의 희생양(?)이 될 출판사를 찾는 일이 남았다.
“자 누가 이 원고를 받아 보시겠습니까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출판사 이메일 주소는 어떻게 구하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