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윤성빈 이전에 그 남자가 있었다

킥복싱 체육관의 그 남자

by 훈남아빠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간 킥복싱 체육관 안은 내 생각보다 더욱 열기의 농도가 짙었다. 회원들은 이열로 죽 마주 보고 서서 한 줄은 발차기 및 원투 세트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킥판을 들고 발차기와 펀치를 받아주고 있었다.


쭈뼛거리며 입구에 서서 사람들이 운동하는 것을 잠시 보고 있는데, 운동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한 사람이 갑자기 눈을 희번뜩하며 나를 쳐다봤다. 키가 크진 않았지만 반팔, 반바지 사이로 굉장히 다부지게 잡혀 있는 근육들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헤어스타일도 당시에 유행하던 샤기컷이었는데, 앞머리를 하늘로 끌어올리고 얼굴에 슬쩍슬쩍 보이는 광대는 인상을 굉장히 강하게 보이게 했다. 그런 사람이 앞에 있는 회원의 킥을 잡아주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는 눈을 살짝 위로 치켜뜨고는 맹수의 눈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날씨가 추워서인지 긴장해서인지 살짝 떨면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환하게 웃었고 번쩍이는 새하얀 치아가 드러났다. 나는 웃는 모습이 그렇게 사람의 인상을 다르게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는 점점 나에게 다가오면서


“제가 눈이 안 좋아서 몰랐네요.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어색한 서울말로 말했다. 그는 이 체육관의 대표 선수이자 코치였다. 나보다 네 살이 많은 형이었다.



이 코치 형님은 사실상 이 체육관에 안방주인과 다름없었다. 관장님도 체육관에 계시며 회원들에게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주셨지만, 무뚝뚝해 보이는 관장님이었다. 그 관장님이 굉장히 정이 많고 따뜻한 분이라는 건 시간이 꽤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이 형님은 체육관에서 수업을 거의 본인이 운영했다. 그리고 체육관 수업이 다 끝나면 본인의 개인 운동을 좀 더 하다가 체육관 정리 및 마감까지 도맡아 했다. 형님과 좀 친해지자 나는 일부러 마감 시간 좀 전에 체육관에 가서 같이 운동하고 같이 체육관 정리를 하고 나왔다. 형님은 편의점 가서 핫바와 우유를 종종 사줬다. 나도 얻어먹기만 하는 건 싫어하는 성격이라, 과외비 받으면 한동안은 내가 사겠다며 투닥거렸다.


사실 나는 체육 하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내가 체육 전공인들을 많이 겪어본 것도 아니면서, ‘운동하는 사람들 뭐 엄청 거칠고, 술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고 그러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형님을 만나고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형님은 술을 좋아했으나, 소주 한 잔만 마시고 그 이후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거기에 몸도 좋고 웃는 상이라서 여자 회원들의 애정 수요가 좀 있었으나, ‘지금은 연애하면 죽도 밥도 안된다’며 정말 운동에만 전념했다.


가끔 욱하는 것 같았으나 “운동하는 사람이 욕하면 안 된다”하면서 욕도 일절 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투에서는 사투리가 조금도 안 느껴지지 않냐며 누가 봐도 완벽한 사투리로 말도 안 되는 서울말을 자주 했다.


어떤 날은 날 보며 형님이 “야! 훈남아빠야 오바라”라고 해서 “네? 뭐가 오바예요?”했는데, “아니 오바라고”하며 재차 말했다. “그러니까 뭐가 오바예요?” 했는데 “아니 여 오바라고 여”해서 한참의 실랑이 끝에 그 말을 이해를 했다. 개인 훈련을 시켜줄 테니 "이쪽으로 와봐라" 하는 말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경상도 분임에도 불구하고 형님의 사투리는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렇게 평상시에는 그저 잘 웃고 가끔은 좀 실없어 보이기도 하던 형님은 운동할 때가 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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