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미래』가 던지는 질문
드디어 이번 주 토요일, 7월 5일이 다가왔습니다.
달력 위의 평범한 하루가 어느새 운명의 날로 떠오른 것입니다. 일본 만화가 타츠키 료 씨의 꿈 때문입니다. 그의 저서 『내가 본 미래』에 등장한 난카이 대지진 예언은, 실제로 항공편 일부를 멈춰 세울 정도로 사람들의 불안과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인공지능이 날씨를 분석하고 주가를 예측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정교한 기술을 신뢰하면서도, 동시에 한 개인의 꿈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입니다.
빅데이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도, 만화 속 계시에 몸서리치는 우리.
과연 이것은 진보일까요, 아니면 퇴보일까요?
예측의 차가움, 예언의 뜨거움
우리는 이제 예측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이 건네는 날씨 정보에 따라 옷차림을 고르고, 인공지능이 제시한 최적의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연애 상대조차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대상 중에서 고를 수 있습니다. 미래는 더 이상 신비한 영역이 아닙니다.
통계와 확률의 언어로 계산되어, 차갑고 정확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제시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 한 만화가의 꿈에 다시 주목하고 있는 걸까요?
바로 여기에서 ‘예측’과 ‘예언’의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납니다.
예측은 ‘아마도’라고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반면, 예언은 ‘반드시’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예측은 책임을 분산시키지만, 예언은 예언자 자신의 존재를 걸고 발화됩니다.
타츠키 료 씨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그가 과거에도 몇 차례 ‘적중’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2020년의 팬데믹. 그는 이들 재난을 사전에 꿈으로 보았다고 주장합니다. 그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많은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합니다. 왜일까요?
어쩌면 과학의 냉정함 때문입니다. 지진학자는 “30년 내 70% 확률”이라고 말하지만, 이 말은 정확하면서도 메마릅니다. 반면, 예언자는 “7월 5일 오전 4시”라며 단정합니다. 설령 그 말이 틀릴 가능성이 있더라도, 그 단언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가능성’보다 ‘확신’을, ‘아마도’보다 ‘반드시’를 원합니다.
이 순간, 인간의 의식 깊은 곳에 있는 심리적 갈망이 드러납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이야기와 신화를 원합니다. 숫자보다 서사를, 그래프보다 신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불안이 만들어낸 풍경
항공편이 실제로 취소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사람들이 실제로 행동을 바꾸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현대인이 여전히 비합리적인 믿음을 품고 있다는 증거일까요? 아니면 과학적 예측이 가지는 한계에 대한 직관적인 반응일까요?
아마도 둘 다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을 신뢰하지만, 동시에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이면서도, 그 너머의 무언가를 끝내 찾고자 합니다.
그 바탕에는, 미래를 대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불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예측이 쏟아져도,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그 불확실함 앞에서, 우리는 확실한 무언가—설령 그것이 ‘꿈’일지라도—를 붙잡고 싶어 집니다.
혼돈 속에서 지혜를 찾다
7월 5일이 지나면, 우리는 예언이 적중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우게 될지입니다.
현대 문명은 독특한 시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예측과 예언이 공존하고, 과학적 합리성과 신화적 상상력이 나란히 존재하는 시대입니다.
이는 혼란일까요, 아니면 인간다운 모습의 또 다른 형태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둘 다를 필요로 하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예측을 통해 현실을 관리하고, 예언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며,
과학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고, 신화를 통해 경외심을 유지하는 것.
이 둘이 균형을 이루는 곳에 지혜가 깃들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예측이 맞았는지, 예언이 실현되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만, 그와 상관없이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본 미래』는 어쩌면 ‘현재’를 비추는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과학과 신화가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
우리는 더 이상 순수한 과학의 시대도, 순수한 신화의 시대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두 세계가 뒤섞인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명한 선택을 내리는 것입니다.
예측의 유용함을 인정하되 맹신하지 않고,
예언의 매력을 이해하되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태도.
7월 5일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또 다른 예측과 예언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여전히 같습니다.
“과학의 시대에 살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 법은 무엇인가?”
“합리성을 추구하면서도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그 해답은, 예측과 예언 사이 어딘가—이성과 직관이 만나는 그 지점—에 있을 것입니다.
그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일지도 모릅니다.